#묘향 #하동 화개계곡 #전주
아침 냄새에 잠이 깼다
녀석은 세상모르고 곤히 자고 있다
앞으로 이 녀석을 보듬어 안고 잘 날이
과연 얼마나 있으려나
자는 녀석의 손을 꼭 잡으니
가슴이 아리다
푹 자도록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밖으로 나오니 먼저 일어난 짝꿍은 벌써 앞마당까지 돌아보고 숙소 앞 작은 테이블에 앉아있다
깊은 숲 속에 들어온 것처럼 아늑하고 한가롭다
방안에 마련된 다기를 들고 나와
익숙지 않은 손놀림으로 차를 우려 본다
나른한 여유로움에 잠시 일상을 잊고
문득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드는 아침이다
이사 후 5개월 어찌 살았는지
몸과 마음이 한시도 쉬질 못하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게
작은 쉼은 힐링 그 자체였다
안채로 내려오니 주인아주머니께서
분주히 뭔가를 준비하고 계신다
"벌써 일어나셨어요? 커피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우리는 주방(주인집은 자는 곳과 주방이 분리되어 있다) 앞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드립 커피 한잔에 방울토마토를 선물 받았다
선선할 때는 아궁이 불을 지펴 방을 데워주는 황토집이라 여름보다는 늦가을 단풍이 물들었을 때 즈음 다시 오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결혼해서 7년을 천안에 살았다며 반가워하시는 주인 내외와 잠시 얘기도 나누고
구석구석 공들여 꾸며놓은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럭셔리하고 경관 좋은 한옥 게스트하우스들도 많이 있겠지만 나는 편안한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화장실도 작은 편이고 다소 불편한 점도 있지만
사람이든 집이든 마음 편안한 게 제일이지
게다가 성수기에 3인 1박 8만원이면
아주 훌륭하다
천천히 녀석을 깨우고 짐을 챙겨 나서는데
인사를 하려다 녀석이 갑자기
"사진 찍어도 돼요?" 한다
"나랑?" 아주머니도 나도 깜짝 놀랐다
"지금 화장도 안 하고 엉망인데 어쩌지?"
"괜찮아요~" 하며 녀석은 끼고 있던 썬그리를 건넨다
아주머니는 녀석의 썬그리를 쓰시고
활짝 웃으신다
녀석의 Gudak카메라 어플로
하동에서의 기분 좋은 한 컷을 남겼다
(Gudak사진은 에필로그에서 공개)
※묘향: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매화골 먹점길 85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인데 브런치에선 장소 검색이 안된다ㅜㅜ)
아주머니께서 추천해주신 두부집의 아침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밑반찬은 짜지 않으면서 맛이 좋았고
감자전은 보들보들
두부는 따뜻하고 고소한 게
속이 편안하고 든든했다
녀석도 기분 좋게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오늘 목적지는 하동 화개계곡
최대한 한적하고 물 많은 곳을 찾으려고
검색도 해보고 여기저기 차를 세워 살폈다
평상을 빌려 고기를 굽고 있는 가족들도 많고
다리 밑 물 많은 곳엔 튜브를 탄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지만 우리랑 어울리는 장소는 아니었다
결국 큰 대로에서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서 찾아낸 장소는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었다
녀석은 발도 담그고 송사리도 잡고
사진도 찍으면서 혼자 잘 놀아준다
절대 입수는 안 한다던 녀석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폭포 아래 앉으면 삼만원~ 어때?"
"삼만원?"
"응~"
"그럼 해야지~"
"오~진짜?"
"만원에도 할 수 있었는데 ㅋㅋㅋ"
아직도 기분이 좋을 땐 귀욤귀욤한 녀석이다
여름엔 누가 뭐래도 물이 답이다
카메라를 든 녀석은 아저씨한테
물방울 찍는 법과 장노출 촬영을 배워본다
나름 진지한 두 사람이다
결과물도 제법 그럴싸하다
나는 이제 두 사람에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처음엔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앞서서
함께하는 자리가 마음이 더 불편했지만
뭐든 순리대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이라는 걸 알게 되니 이제는 작은 변화에도 감사하게 된다
3일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오늘도 우리의 사연이 소개되고
신청곡 산울림의 회상이 흘러나온다
이제 녀석을 보내줄 시간이 되어간다
내일부터 방학 한 달을 꼬박 영화 촬영으로 보내야 하는 녀석이다
방학마저도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서운함과 동시에 이제는 녀석과 멀어질까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천안까지 가서 서울을 보내려니 중간에 배가 고플 것 같아 우리는 녀석과 헤어질 장소를 전주로 결정했다
전주 객리단길 에서 저녁을 먹고
시외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녀석이 저녁 메뉴로 고른 것은 불족발
복고풍 인테리어에 녀석의 Gudak카메라가 바쁘다
기대만큼 맛있지는 않았지만
녀석은 옛날 도시락과 족발로 맛나게 배를 채웠다
늘 모든 것이 녀석 위주로 결정되는 것은
외둥이의 특권이다
17년 동안 익숙해진 일상에 녀석이 감사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외둥이를 가진 부모에게
아이의 기쁨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있을까?
형제를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세상 유일한 존재에 대한 소중함이다
그래도 녀석이 사랑받는 감사함과 어른들에 대한 예의를 갖춘 외둥이가 되길 바라며
넘치지만 않도록 마음껏 사랑해 주고 싶다
전주 배스킨라빈스에서 블라스트를 하나씩 물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제 녀석은 서울로 간다
버스에 오른 녀석을 배웅하는데
뭔가가 자꾸 울컥울컥 올라온다
녀석은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억지 쓰듯 만들어낸 귀한 3일
내게는 이 여름을 버텨낼 힘이 되겠지
고생 고생하며 철딱서니 두 모녀 보호자가 되어주고
멋진 사진까지 선물해준
그 사람도 고맙고
무더위에 엄마 따라다니며 잘 먹고 잘 놀아준 녀석도 고맙고
3일 내내 예쁜 날씨 보여준 하늘마저 고마운 시간
에필로그에서 계속...
글ᆞ kossam
사진ᆞkossam & Ari &Daye
산울림 - 회상 [출처 :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