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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Feb 13. 2018

[역마살과 여행 의지 : 강릉]

무박 2일 강릉 즐기기

2018년 2월 3일


덕유산에 다녀온 뒤

줄곧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녀석과 뮤지컬을 보기로 한 토요일

나는 차를 천안아산역에 두고

기차를 탔다


이 기차를 타고 바다 보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우리 바다 보러 갈까?"

"오늘?"

"응~"

"아무 준비도 안 해왔는데?"

"괜찮아, 칫솔만 사면 돼"

갑작스러운 제안에 녀석은 망설였다


결국 불쑥 여행길에 오른 모녀,

녀석의 얇은 옷차림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모직 담요에 두꺼운 양말을 샀지만

아침에 바닷바람이 걱정이었다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 두 시간

저녁은 기차 안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녀석이 좋아하는 공씨네 주먹밥 두 개를 샀다


숙소는 경포 솔향 온천으로 결정

아무데서나 잘 자고 찜질방도 좋아하는 녀석이라

이럴 땐 다행히 죽이 잘 맞는다


도착 후, 우리는 택시를 타고

버드나무 브루나이라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버려진 양조장을 개조해서 만든 수제 맥주집이다

녀석은 아직 맥주는 못 마시지만

여기저기 둘러보며 마음에 들어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10시쯤이었는데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11시가 마감인데 음식은 11시까지

맥주는 11시 반까지 주문을 받는다고 했다

우리는 배가 많이 고프진 않아서

작은 피자 하나(홍제 피자: 동네 이름이 홍제동)와

수제 맥주 한잔 그리고 레모네이드 하나를 주문했다

수제 맥주는 종류별로 맛을 보고 싶었지만~ㅎㅎ

언젠가 녀석과 같이 할 수 있을 때 다시 오기로 하고

마감시간까지 녀석과 수다를 즐겼다





우리 영화 보고 들어갈까?

그래!

강릉역 가까운 곳에 강릉 CGV가 있길래

물었더니 고민도 않고 오케이다

작년 여름 광양 CGV 이후

낯선 영화관에서 보는 두 번째 영화는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믿고 보는 이병헌의 섬세한 연기와

연기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박정민의 연기

갑자기 선택한 여행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멋진 영화였다


다시 택시를 타고 찜질방에 도착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목욕을 하고

수면실을 찾아 올라갔는데

세상에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두 층 가득히

매트 하나씩 차지하고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린 여자 수면실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두세 시간 정도면 해 뜨는 시간이라

잠시 눈을 붙이려고 누웠는데

녀석은 피곤했는지 바로 단잠에 빠져버렸다

급하게 결정한 것도 있고

숙박비를 아끼려고 선택한 곳이지만

편히 쉬려면 근처에 숙소를 잡는 게 좋을 듯하다

한 가지 좋았던 것은 온천수였다

해수온천이라 약간 짠맛이 나기도 했지만

녀석도 나도 한결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해가 뜨는 걸 보고 싶어

녀석을 토닥토닥 깨워서 준비시켰다


겨울바다가 다 그랬듯

잠시만 서있어도 뼛속까지 시릴 테니

긴 시간 서서 지켜보진 못하겠지만

꼭 녀석과 함께 오고 싶었던 겨울 동해바다


그곳엔 내가 막연히 머릿속에 그렸던

그 파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힘차게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가슴속이 다 후련해지는 그런 파도


구름이 많아서 아쉽게도 해는 빼꼼 눈인사밖에 못했다

가까운 강문해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녀석이 꼭 가보고 싶다는

도깨비 촬영지 주문진 방사제가 있는 영진해변으로 갔다

파도가 높아 가까이 가서 인증샷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파도가 넘실대는 방파제는 정말 멋졌다

날도 춥고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데 우린 그래서 더 좋았다


녀석은 춥다고 징징거리면서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녀석의 귀여운 뒷모습과

여기저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살짝 구름 낀 파란 하늘 사이로 비추는 햇살

그 모습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실력이 아쉬울 뿐이었다


문제는 근처에 문을 연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잠시 몸을 녹일 카페나 편의점이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영진해변은 점심시간쯤 문을 열것 같은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우린  짧은 겨울바다 구경을 마친 후

다시 택시를 타고 강릉역으로 향했다


평창올림픽 관광객들을 위해

경포해변을 멋지게 꾸며놓아서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는데

그 정보를 얻지 못한 우리는

창밖으로 아쉬움만 내려놓고 와야 했다


녀석의 오후 일정으로

일찍 기차에 올랐지만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 더 좋은 것 같다

다시 또 가고 싶은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음엔 경포해변 근처 작은 숙소를 잡고

지인이 추천해준 물회도 먹어보고

여유롭게 즐기다 와야겠다



거센 파도였지만

이상하게도

화난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조잘조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랑스런 아이처럼

칼바람마저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래서 눈물이 날것 같은


뭐라 말로 표현이 안되는


아무 준비도 없이

훌쩍 달려온 이 곳엔


아마 나를 부른 이유가 있었을거라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녀석이 곤히 잠들었다

어제 쓱 건네주던 녀석의 편지를

살짝 꺼내어본다


오랜만에 받아 본 녀석의 편지다

떨어져 지내며 엄마가 외로울까 걱정하는 녀석

이제 속도 조금씩 익어가는 모양이다

사랑해요 한마디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추위에 떨어 몸살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한 달에 한 번은

이렇게 녀석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냥 생각으로 그칠 수도 있겠지만

말하는 대로 될 수도 있으니

열심히 궁리해 봐야겠다



글ㆍ사진: kossam





※기차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찜질방에서 숙박을 하니

숙식경비가 절감되었지만 날이 추워 이동수단으로

택시를 이용하니 교통비가 많이 들었다

(서울ㅡ강릉 ktx: 1인 27600원

솔향온천: 24시간 기준 1인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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