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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Jan 18. 2019

[역마살과 여행 의지 : 포항]

#열여덟번째 여름 : 02



2018년 7월 24일

포항은 두 번째였다

인연이라는 것은 시작도 끝도 알 수가 없다

삶의 여행에서는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때론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감사한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만난 따뜻하고 감사한 인연이 포항에도 있다

내게는 늘 베풀기만 하는 언니

죄송한 마음 한가득이지만

얼굴 한번 더 보고 싶어 염치 불구하고 또 달려갔다

회를 좋아하는 녀석은 일단 폭풍흡입부터~

언니를 보니 아프던 속이 신기하게도 가라앉는다

그래서 편안한 음식만 골라 조심조심 식사도 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한바탕 속내도 털어놓고

친정에 온 듯 마냥 마음이 편안했다

언니는 헤어지기 전 건어물 가게에서

멸치랑 황태포까지 잔뜩 사서 품에 안겨주었다

언젠가 내 생활이 좀 더 편안해지면
언니랑 들로 산으로 바다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

좋을 텐데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적어 넣으며

우린 아쉬움 속에 작별을 했다




숙소로 가기 전 우리는 호미곶에 들렀다

나는 전에 한 번 와봤지만

녀석과 다시 오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 더 좋았다

호미곶의 짙푸른 바다는

전과 변함없이
마음속까지 깊이 파고들어온다

녀석도 그저 말없이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녀석도 나처럼 그곳에서 행복했을까

나는 녀석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지금도 혼자 그날을 떠올린다

한참을 그렇게 바다 앞에 머물다

우리는 천천히 숙소로 향했다




포항에서 우리가 선택한 숙소는

빠쏘 풀필라였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는 수영장이 있는 펜션이었다

작은 인피니트 풀이 있는 제일 좋은 룸은

너무 비싸서 그냥 구경만 하고

우리는 월풀이 있는 작은 방을 선택했다

야외 수영장이 따로 있기 때문에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녀석은 도착하자마자 뛰어들 준비를 했다

새로 장만한 핑크하트 튜브 세트도 빵빵하게 불고

머리를 적시기 전에 기념샷도 한 장 남겼다

물이 그리 차갑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녀석은 튜브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즐거워하는 녀석을 보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물을 싫어하는 아저씨도 용기를 내서 잠시 몸을 담갔다

한참을 놀았지만 녀석은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른 손님들은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고

둘만 남았을 때 녀석이 슬쩍 속내를 던진다

"엄마, 나 대학 갈 때는 영화전공 안 하고 싶은데.."

"방송영상 쪽으로 결정한 거야?"

늘 방송작가가 꿈인걸 알고 있었으니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응, 이제 결정하려고"

"그래, 하고 싶은 거 해야지. 근데, 무슨 걱정 있어?"

"그러려면 수능 공부를 시작해야지"

"좀 늦었지만 해야 하는 거면 열심히 하면 돼"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재능이 없나 봐..."

그동안 고민이 많았던 것인지

녀석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진로를 결정하면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영화는 이제 접는 거야?"

"응, 여름 워크숍까지 열심히 하려고, 이번에 내 영화를 찍게 돼서 그래도 다행이야. 근데, 엄마한테 미안해."

(녀석의 영화 이야기는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25],[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26]에서 연재할 예정)

"왜 미안해?"

"비싼 학비 내서 서공예 보내주고 이제 영화도 찍게 됐는데

내가 다른 진로를 선택해서.."

"그래서 서공예 온 거 후회해?"

"아니.. 덕분에 내신도 잘 받았고, 학교 생활도 즐거웠으니까.."

"그럼 된 거야, 엄마 걱정하지 말고, 대신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감 가지고 열심히 하면 돼"

힘든 길을 결정한 녀석을 보며
속은 무척이나 심난했지만

나는 녀석의 손을 꼭 잡고 분명 잘할 수 있을 거라며

한참을 다독거렸다


나는 녀석을 믿는다

늘 잔소리를 하고 정보 찾는 걸 도와주는 것도

녀석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름이 지나면

또 녀석이 선택한 새로운 길을 함께 걸어갈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매번 처음이라 낯설고 서툰 것은

이제 숙명처럼 느껴진다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고

엄마의 응원과 지지를 구하는 녀석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월풀에 물을 미리 받아 놨던 터라

우리는 수영장에서 나와 바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피로도 풀리고 개운한 기분이 되었다

이제 슬슬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펜션이니 고기를 구워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
바비큐를 해 먹다가 작년에 생고생을 했던

아저씨를 위해

우리는 간단한 저녁을 해 먹기로 했다

페북에 돌아다니던
불닭볶음면 소스를 이용한

'삼겹 불닭 김밥'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근처 마트에서 재료와 과일과 맥주(물론 나는 못 마심ㅜㅜ)를 샀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20787234759968&id=207176522787720

녀석은 적극적으로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도왔다

삼겹살 대신 베이컨을 넣었고

발이 없어서 손으로 말아야 했지만

제법 그럴듯한 저녁이 준비됐다

엄마는 너무 조금 먹는다고 걱정하면서도

두 볼 가득 김밥을 넣고 맛나게도 먹는다

치우는 것도 간단하게

편안하고 즐거운 저녁을 마치고

그렇게 두 번째 밤을 맞았다

세상 제일 소중한 두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있다는 것이

더없이 고마운 밤이었다






※사진은 퍼가지 말아주세요!!!

글ㆍkossam 

사진ㆍAri & 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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