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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May 12. 2021

[초보 고딩엄마의 분리불안 극뽁일기 49]

기도

[201911월 6일]


고3 엄마라고 하면서도

나는 사실 녀석에게 딱히 해준 것이 없다


일선에 있다 보니

다른 엄마들보다 조금 더

입시정보에 가까이 있었던 것도

물론 도중에 방향을 바꾼 이유도 있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큰 도움이 안 된 것 같고

뒤늦게 시작한 수능 수학 공부도

붙잡고 잔잔히 가르치기보단

잔소리에 구박에 답답한 엄마 마음이 앞섰다


요즘 한결같이 삼시세끼 밥을 챙기던

선배 엄마 한 분이 자꾸 생각난다


좋은 학원에 좋은 환경이니

잘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집에 몇 번 방문하면서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차려둔 밥상을 보고

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정갈한 그릇에 담은 밥, 국, 반찬, 과일까지

한 끼 식사가 말할 수 없이 정성스러웠다


이런 상을 매일 마주하는 아이들은

삐뚤어질 수가 없겠구나

돈도 아니고 정보도 아니고

엄마의 마음과 정성이구나


우리집 생활비와 맞먹는

나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이들 과외비에

그런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라

색안경을 끼고 봤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이가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다는 얘길 듣고

나는 그 엄마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이 떠올랐다

진심으로 축해해주고 싶었고

엄마 밥이 정답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나는 빵점짜리 엄마다

따뜻한 밥 한 끼 챙겨주지도 못하고

말 한마디 포근하게 해주지 못하는

말뿐인 고3 엄마


그래서 오늘 나는 산에 오르기로 했다

이제는 기도밖에는 할 일이 없으니

108배를 해볼까도 고민했지만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어려서도 산에 오르는 게 힘들어서

시작했다가도 늘 중도에 포기를 했다


만발한 억새도 보고 싶고

마음도 다잡을 겸 선택한 곳은 정선 민둥산이었다


중반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잘 올랐다

탄성을 지를 만큼 아름다운 절경이 시작되는

중턱부터 드디어 고난이 시작되었다


지팡이 하나 주워 들고 천천히 오르는데도

십미터 가기가 쉽지 않았다

녀석의 얼굴과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에 번갈아서 둥둥 떠다녔다


힘은 드는데 쉬어가는 자리마다 보이는 풍광들은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억새들은 하나하나 빛을 머금은 채 바람을 타고 있었고

쨍하게 파란 하늘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서 있었다


마지막 고비를 넘어 꼭대기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는데

왜 사람들이 이곳을 힘겹게 오르는지

내가 왜 그렇게 이곳에 오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버지랑 같이 꼭 다시 이곳에 오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나는 아버지께

영상전화를 걸었다


화면으로는 담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풍광들이지만

이리저리 돌려가며 열심히 보여드렸다


좋은 결과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내가 수십 번 되뇌었던 기도는

녀석의 합격이 아니라

녀석의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기도>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

너를 생각했어


파란 하늘 끝에서

네가 엄마를 부른다고


엄마가 해줄 게

이것밖에 없어서

어쩌나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들이

너의 눈물 같아


구비구비

흔들흔들

가슴이 울렁거린다


아가,

힘내라


다 괜찮을 거야


하늘도 구름도

손이 닿을 듯 내려앉아


엄마 기도를

들어주려나 봐



글ㆍkossam

사진ㆍ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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