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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Sep 24. 2015

[역마살과 여행 의지]

성장통 #part21


"엄마, 나 비행기가 타고 싶어"
방학이 끝날 무렵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또, 슬슬 엉덩이가 들썩 거리는구나?"
"히히~~~"

어려서부터 하도 데리고 다녀서 그런지
원래 타고난 성향이 그런 건지
녀석은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인천공항이라고 말하는 녀석이다
떠날 때는 행복으로
돌아올 때는 눈물로 가득한 인천공항

※녀석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 ㅡ 인천공항


몇 년 전 사주타로 보는 곳에서
재미로 1년 운세를 보고 있었는데
더 궁금한 건 없냐고 물으니
대뜸 "제가 역마살이 있나 봐주세요~"
해서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다 웃었던 적이 있었다
쪼그만 게 그런 걸 물어보니
재미있어하며
손을 좀 보자 하더니
"어? 이 녀석 진짜 역마살이 다섯 개나 끼었네?" 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나중에 외국 나간다 하면 보내세요~
아니면 파란 눈 사위 볼 겁니다~"
하는 게 아닌가?^^;;;;;

어디서 역마살이란 말을 주워 들었는지
내 딸이지만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8살 무렵, 스위스에 사시는 옛 스승님이
스위스 친구분이랑 부모님을 뵈러 들어오셨다

다시 돌아가시는 날이었다

나는 녀석을 인사시키려고 인천공항으로

배웅을 갔다
점심을 먹으면서

제법 영어도 알아듣고 하는 모양이

귀엽고 대견하다며 두 분다 녀석에게서

눈을 못 떼셨다

그러다 출국시간이 다가와 인사를 하려는데

이 녀석 갑자기 자기를 데려가라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엄마 없이 갈 수 있어?"
"네! 갈 수 있어요~"
"이번엔 티켓도 없고 다른 곳에 들러가야 하니까 다음에 꼭 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녀석을
나는 어이가 없어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기 저 큰 가방에 저를 넣어가지고 가심 안돼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선생님은 울고 있는 녀석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다예가 10살 되면 선생님이 초대할게~
엄마는 여기 두고 혼자 와야 하는데
할 수 있겠니? 대신 그때까지 영어공부 열심히 해야 해?"
눈물을 닦아주며 물어보셨다
결국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고 나서야 녀석은 두 분을 보내드렸다


그 이후 꼬박 2년을 손꼽아 기다려
녀석은 3학년 겨울방학 소원대로 스위스로 날아갔다
혼자서 보내야 하는 나도
혼자서 가야 하는 녀석도
3주나 엄마랑 떨어져 있어야 하는 어려움도
녀석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평소엔 소심한 녀석이 어디서 그리 용기가 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혼자 떠났던 스위스 여행 ㅡ 10살


녀석은 결국 자기 의지로 해낸 거라 생각한다
엄마나 누구의 도움도 아닌
그저 간절한 어린 마음의 의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냈고
그 안에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가지고 돌아왔다
오자마자 비빔밥이 먹고 싶었다며
가는 길에 두렵고 무서웠던
솔직한 얘기도 털어놓았다

이 녀석 만 할 때 나는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망설이고 두려워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막심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저렇게 들썩거리는 녀석이 나는

가끔 부럽기도 하다


녀석에게 여행은 그저 놀이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작은 노트 한 권을 끼고 다니며

보는 대로 적고 그리고 느끼고 했던 녀석에겐

그 안에서 얻어지는 녀석만의 희망과 행복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세상 풍파 겪어 내야 할

암흑기에 들어서 있는 녀석이지만
그 또한 잘 이겨내고 있는 것은
그런 희망과 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꿈을 구체화하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조금만 더 의지를 보였으면
하는 못난 엄마의 욕심으로
가끔 아이를 채근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믿는다

책과 여행을 사랑하는 녀석이기에
구불구불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길을 잘 찾아서
달려갈 거라고

'여행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여행다운 여행을 한번 못 가본  듯해서

괜스레 녀석에게 미안해진다

시험도 끝나고 명절도 지나면
녀석과 함께할 여행을 계획해야겠다
그동안 투드락 거리 느라 멀어진
모녀 사이
확 풀릴지  더 꼬일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낯설음에 적응하는
그 시간들이
우리를 좀 더 성숙하게 해줄 거라 믿는다


돈도 시간도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

늘 망설이고 뒤로 미루게 되는 것이 여행이었지만

꼭 그런 건 아닌듯 하다

마음만 먹으면 길이 보이고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니

꼭 비행기를 타야하는 게 아니라

가까운 데에도 너무나 멋진 곳들이 있으니

녀석과 함께 여행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역마살이 좀 끼었으면 어떠랴
그렇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인생공부 인 것을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자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이 보고 배우고

더 큰 사람이 되길




글, 사진: kossam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제일 좋은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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