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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Oct 24. 2015

[역마살과 여행 의지 ㅡ 도쿄 편 05]

아사쿠사 / 지브리 / 야나카 긴자 / 시부야


아사쿠사의 월요일 아침은 화창하고 상쾌했다

어제의 피로로 발바닥이 좀 아프긴 했지만,

우린 다시 외출 준비로 분주했다



오늘 하루는 녀석이 정한 코스대로 움직일 예정이었다


일단 한국에서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기모노 체험!

도쿄에 온 첫날 센소지 근처에서 기모노를 입은 처자들을 본 뒤 녀석은 자기도 입어보고 싶다며 알아봐 달라 하는 게 아닌가...


안 그래도 말도 안 통하는데

바가지를 쓸까 걱정도 되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쉽지 않아서

그날 밤 녀석이 잠든 뒤 나는 다시 네이버 검색에 집중했다


'아사쿠사 근처 기모노 체험

기모노 입어볼 수 있는 곳

도쿄 기모노 유카타 등등'


한참을 검색하다 '도쿄에서 기모노 체험하기'

라는 네이버 카페가 눈에 띄었다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것이 일단 마음에 들어

카페 가입을 하고 연락처를 저장해서 다음 날 카톡을 보냈다

마침 위치도 아사쿠사역 근처였다

답변도 바로 보내줘서 생각보다 쉽게 예약을 하고

계좌이체로 비용도 지불했다

기본 체험비용은 31000원(신발, 가방, 머리장식 포함)이고 좀 더 화려하고 좋은 옷은 50000원 정도였다

(고급 머리장식, 메이크업, 포토 등 추가 옵션들도 따로 있다)

두 명이 하기엔 조금 비싼  듯해서 녀석만 체험하기로 하고 오전 9시 30분으로 예약을 했다


메이크업은 하고 오라고 해서 가볍게 아이라인과 눈썹, 틴트정도로 꾸미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사쿠사 역에서 가는 길은 네이버 카페에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장소를 이전했는지 건물 앞에 직원이 나와 있었고

새로 옮긴 장소로 안내했다


먼저 속옷을 갖춰입고 옷을 고른 다음 머리를 간단히 땋아서 올려준 뒤 머리장식을 달아주었다

가방과 신발까지 고르고 나면 입었던 옷과 신발은 번호표를 붙여서 보관하고

밖에 나가서 사진도 찍고 자유롭게 다니다가 반납시간 안에 돌아오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한국사람뿐 아니라 중국인도 서양인도 꽤 많은 모양이었다.


오늘 일정에 지브리 박물관 관람이 있어서

오전에 잠시 사진만 찍고 다시 반납하려 했는데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오후까지 입고 다니겠다고 했다

내가 고슴도치 엄마라서 그렇겠지만

녀석은 금방 시집 보내도 되겠다 싶을 만큼 다 큰 아가씨처럼 예쁘고 귀여웠다

그렇게 찍기 싫어하던 사진도 원 없이 찍어주고

알아보지 않고 그냥 패스했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일단 아침은 아사쿠사역 근처 시장에서 발견한 자그마한 라멘 가게로 결정했다

처음엔 가격이 저렴해서 맛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틀 동안 먹은 음식 중 제일 나았다~^^;;;

녀석은 맛있다면서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지브리 박물관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나는 급피로가 몰려왔다

조금 긴 구간이라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는데 어제 탈이 났던 것까지 겹쳐서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닛뽀리역에서 지브리까지는 토토로에 나오는 귀여운 고양이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정원과 건물 등 아주 예쁘게 꾸며놓은 지브리는

아쉽게도 내부 사진은 찍을 수 없게 되어있었다

구석구석 그동안 쭉 봐왔던 녀석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들의 원화들과 제작과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작업실,

그리고 영화관과 캐릭터숍 등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나는 건물 내부보다는 외부시설들이 더 예쁘고 정감 있게 느껴졌다. 시간이 많으면 정원에서 한적하게 쉬다가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근처 키치죠치 마을로 가서 점심을 먹고 구경도 좀 할까 했었는데

녀석의 기모노 반납시간에 조금 늦을  듯하여

일단 다시 아사쿠사로 이동했다

계속 컨디션 난조였던 나는 지브리에서 녀석이 맘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쫓아다니다

살짝 짜증이 났었다.

전화 연락이 되지 않는 곳이고 사람은 많고

혹시나 서로 떨어져서 찾아야 되는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기분이  다운된 상태로 아사쿠사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녀석이 가만히  한마디 한다

"엄마, 미안해~"

"뭐가?"

"엄마 힘든데 짜증 나게 해서~"

"아냐, 괜찮아~ 엄마가 좀 피곤해서 그랬나 봐~"

녀석은 다시 팔짱을 끼며 기분이 좋아졌다


한국에선 녀석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걸어 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


3일 내내 녀석과 함께 이렇게 붙어 다니니 나는 그저 그걸로 이 여행의 모든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녀석과 나는 하루에 한 시간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구나'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와서 마음이 울컥했다

나는 녀석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다시 기운을 내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야나카 긴자에는 고양이 마을이 있다

녀석이 가보고 싶다고 해서 정한 곳이지만

직접 그 길에서 고양이를 보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개를 끌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아

개들을 만나는 것이 훨씬 쉬웠다~^^;;;

관광객들이 많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작은 상점들을 구경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길지 않은 좁은 골목 양쪽으로 작은 상점들이 올망졸망 고양이 상품들을 팔고 있었고

사이사이 음식을 파는 곳들이 있었다

배가 고팠는지 녀석은 계란부침개 같은 것을 파는 가게 앞에 줄을 서서 메뉴 중에 김치가 들어간 것이 있다며 주문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 여행

비싸고 유명한 음식들은 못 먹었지만

먹는 것마다 녀석은 완전 맛나게 잘도 먹었다

부실한 엄마보다 훨씬 좋은 여행자임은 분명하다


귀여운 고양이 팬시점에서

친구들 준다며 스티커 몇 개를 골랐다

입구 쪽에 있는 작은 가게인데

특이하고 예쁜 상품들이 눈을 사로잡았

그래도 총무를 맡긴 뒤로 절대 비싼 것은 사지 않는 기특한 녀석이다

(돌아오는 날, 선물 살 시간이 없어 아쉬웠던 걸

생각하니 이곳에서 가족, 지인들 선물도 샀으면 좋았겠다 후회가 됐다ㅜㅜ)


※이번 여행에서 얻은 최고의 사진




마지막 여행지를 녀석은 시부야로 정했다

나는 다리가 너무 아파 숙소로

가고 싶었지만

녀석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시부야는 온통 네온싸인 가득한 젊은 거리였다

처음엔 그냥 길을 따라 걷기만 하다가

지인이 알려준 초밥집을 찾기 위해

다시 구글 지도를 켰다

가는 도중 어떤 여자분이 들고 있는 쇼핑백에서

Pablo라는 이름을 보았다

내가 찾고 있던 케이크 상점 이름이었다

다행히  그분이 위치를 쉽게 알려줘서

우리는 녀석이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살 수 있었다



초밥집은 시부야역 근처 커다란 건물에 있었는데

역시 그곳에도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녀석은 결국 힘이 들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더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초밥을 포기하고

옆에 있는 퓨전 레스토랑에 들어가

간단히 볶음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나는 도저히 입맛이 없어서 맥주만 한 잔 했는데

평소에 걷지도 않고 운동도 안 한 탓이겠지

생각하며 녀석에게 물었다

"힘들지? 평소에 많이 걸어 다녀야 하는데~"

"나는 괜찮아~ 그래도 내가 엄마보다는 많이 걷거든?"

"그래~ 알았으니 많이 먹어~"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녀석과 이렇게 앞으로도 어디든 여행을 다니려면

건강하고 튼튼해야 하는데~'

힘든 내색 없이 씩씩한 녀석을 보며

흐뭇하기도 하고 반성도 됐다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숙소로 돌아왔다

생일 촛불을 켜주려고 산 치즈케이크는

녀석의 씩씩한 걸음에

이리저리 차여서 산산이 부서졌지만

녀석은 먹으면 다 똑같다며

맛있게 먹었다


3박 4일 도쿄 여행의 마지막 밤,

짐을 정리하면서 녀석을 살핀다

"재미있었어?"

"응~~"

친구들과 카톡을 하는지

녀석은 건성으로 답했지만

3일 내내 녀석과 나는 아주 잘 지낸 듯하다


나 혼자 미션 3가지도(도쿄 편 01ㅡ떠나기 전 상념)제법 잘 수행한 것 같고

비록 발가락은 퉁퉁 부었지만

그리 걷고 또 걸으면서

녀석과 나눈 교감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내일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녀석의 도쿄 세째날 지출기입장 ㅡ 기모노 체험 310엔 추가




글: kossam

사진: Ari, 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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