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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Nov 11. 2015

[통과의례]

성장통 #part 30


닷새 전부터 시작된 신경전이었다

녀석과 나는 사사건건 작은 일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나는 별 것 아닌 말 한마디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오늘 내로 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지금  당장해!"
"왜 그래야 하는데?"
"네 말대로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
벌써 몇 번째 말하는 건지 아니?"
"싫어! 엄마가 해줄 것도 아니잖아!"
개어 놓은 옷들을 정리하는 일부터
먹은 그릇을 치우는 일
고양이 밥 주는 일까지
나의 잔소리는 하늘로 치닫고
녀석의 게으름과 짜증도 절정에 다다랐다

여느 때 같았으면
그냥 내가 해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녀석의 말투며 행동이 거슬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녀석도 그렇게까지 버틸 이유가 없는데도
일일이 받아치며 내 속을 뒤집었고
우리는 서로의 가슴에 계속 상처를 내고 있었다

눈만 마주치면 큰 소리가 나는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았다


나는 오늘에서야 겨우 이유를 알게 되었다

녀석이 보낸 카톡,
"엄마, @@나이트 좀 사다줘"

오늘 아침 나도 컨디션 난조에
허리가 찌릿찌릿 아파왔는데
녀석과 나는 동시에 마법에 걸린 것이다

녀석과 며칠 동안 투드락 거리면서
자꾸만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져서
급기야 엄마한테 전화해
이렇게 살았어 뭐하냐
녀석 때문에 못 살겠다며
펑펑 울기까지 했는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이럴 수가ㅜㅜ 우리 딸도 여자인데 내가 너무 무심했다' 싶은 것이
안도감 반 미안함 반
맘 속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여자들은 마법에 걸리기 전에 자기도 모르게 예민하고 날카로워질 수 있어.
며칠 동안 너랑 힘들었던 게 어쩌면 그래서 인지도 모르니까 우리 같이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자. 엄마가 참아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해!"

나는 카톡으로 먼저 미안함을 전했다



성장통 이야기를 쓰면서
남의 이목이나 부끄러움으로
소재를 선택하고 이것저것 재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가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솔하게 풀고 반성하고
다시 노력하는 것이
내 방식이니까

무슨 일이든 나를 표현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다시 한 고비를 넘긴
녀석과 나는
또 다른 이유로 전쟁을 치르겠지만
오늘은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며칠 전 해준 말이 생각난다

"엄마도 너처럼 하루하루 힘들 때가 있었지만, 지금 엄마는 모든 것이 다 감사해~ 지금은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 주는 것 말고는 더 바랄게 없어~"

기억이 흐릿한 저 편에서
나는 얼마나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을지
그 긴 세월 어찌 견뎌냈을지

그 벌을 받고 있는 거라면
엄마를 위해서라도 견뎌내야지

더 아프고 어두운 세상으로
녀석이 발을 들여놓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사해야지

아직은 욕심도 미련도 버리지 못한
부족하고 부족한 미생이지만,
그렇게 엄마처럼 나도 지켜낼 수 있기를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듯 고요한 밤,
어느새 어엿한 숙녀가 되어가는 녀석과
녀석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나를 본다







[아프고 아파서]

작은 가슴에 아프게 남은 말들
어찌 다 토해낼까

얼마나 아팠으면
얼마나 무서웠으면

말도 한 번 못하고 담아둔 거니

내가 너를 그리 만들었구나
작고 작은 네 가슴에
구멍을 뚫고
못을 치고
참으라 했나 보다

어찌할까
어찌하면 좋을까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리도 힘든 너를
예쁘다 착하다
그렇게 긴 세월 아프게 했어

괜찮다 괜찮다
믿고 싶었던

이 못난 어미를
어찌하면 좋을까

내가 죽어 끝낼 수 있다면
백 번 천 번 그리 했을 것을

그럴 수도 없는 어미는
네가 아픈 것을 보며
평생의 벌을 받는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어미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아가,
너를 어찌하면 좋을까



ㅡ 부모님의 결혼40주년에
축하와 존경과 감사를 전하며


글, 그림: 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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