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따로 글쓰기 따로

그래서 글감이 생긴다

by 샬롯

글쓰기로만 먹고사는 작가들이 얼마나 될까? 잘은 모른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 중 소수에 속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 전업작가를 꿈꿀까? 그것 또한 알 수가 없다.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

인상 깊게 읽었던 유럽의 어느 작가는 우체국에서 일하면서 글을 쓴다고 했고 어느 일본 작가는 첫 책이 대박 난 후에도 여전히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전철 안에서 글을 쓴다고도 했다. 우리나라 어느 작가는 공무원이 되어 퇴근 후에 글을 쓰는 현실을 항상 꿈꿔왔다고 했다.


그럼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난 글쓰기가 곧 밥벌이가 되는 전업작가를 꿈꾼다. 그런데 현재는 어떠한가. 밥벌이용 직장 따로, 글쓰기는 사생활이나 취미 정도로 취급받는다. 나 스스로 그렇게 취급해왔다. 그러면서도 전업작가를 꿈꿔왔다.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계용 일터에서는 수시로 글감이 생긴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글로 풀어내려고 했다. 그래서 글쓰기가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했다. 마인드 컨트롤이 되기도 했다. 자조 섞인 위안을 받았다.


이젠 작은 변화가 아닌 큰 변화가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다. 생활의 고단함을 예술로 승화한다고 그럴듯하게 말하고 싶지만 내 글이 그 정도는 아니다.


아직 쓰고 싶고,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써야 할 글은 시작도 못했다. 한쪽으로 치우친 주제가 있긴 한데 쓸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과거를 떠올려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이 힘든 거였다. 한 번쯤은 꼭 써야만 할 것 같은데 세세한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마음이 좋지가 않다. 다 쓰고 나면 '배설욕구'가 해소된 듯한 감정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내 첫 에세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가족들의 냉랭했던 반응을 기억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왜 가족 얘기를 쓰냐며 화를 냈고 결혼한 여동생과는 한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그게 뭐 자랑이라고 책에 쓰냐며 화를 냈다. 그 당시 나도 동생의 반응이 이해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글쓰기 카페에 털어놓으니, 멘토 역할을 했던 선생님도 처음 에세이 책이 나왔을 때 똑같은 반응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과거 가족관계를 풀어놓으며 스스로는 마음치유가 된 듯하나, 그 글을 본 타가족들이 화를 냈다면 아직 그 가족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다고 보면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에세이, 논픽션은 쓸 때와 세상에 펼쳐질 때의 무게감이 다르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 중에 글 쓰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얘기가 누군가의 글감이 될 수도 있다.


아직 경험치의 한계를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 글감을 얻기 위해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내 방 안에서 하루 종일 머리 싸매고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사소하지만 넙죽 낚아채는 글감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위하고 있다.


나에게 무한정 시간이 주어져도 온전히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또 글쓰기만큼 밥벌이도 중요하다. 모든 것이 필연적이다. 우연은 없다. 때가 오길 기다린다. 쓰면서...

'내맡김의 법칙'을 믿어보기로 했다. 될 일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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