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습관

꼭 100일은 채워야 익숙해지니?

by 샬롯


이번 생은 글렀다는 생각, 단순한 일에도 의미 유무를 따지고 무기력했던 날들, 더럽게 부정적인 인간을 마주할 때 오히려 나 자신의 부정성이 정면으로 보이던 일들...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와 무기력이 반복되던 날들이 길었다. 혹자들은 '코로나 블루'라는 타이틀을 달아보지만, 코로나와 크게 상관은 없어 보였다.


감정적인 결핍과 용서하기 힘든 타인과 가족...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이었다. 딱히 설명하기도 힘든...

어쨌든 내 내면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모두 나의 일이고 나의 책임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명료한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의 철없던 과거들이 갑자기 떠오르곤 했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니니, 마인드 컨트롤만큼은 완벽해야 한다는 착각...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게 되면 과거에 경험한 상처에 자신감 있고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 레몬 심리,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로 뒤죽박죽이 됐을 무렵, 걷기부터 시작해서 운동을 하기까지도 석 달 이상이 걸렸다. 뭐든 그랬다.

석 달... 거의 100일이라는 뜻인데, 어쩜 그 100일은 거의 뭐든 통용되는 적응기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나에게는...

왜 태어난 지 100일 날 을 축하하는지 그 의미도 알 듯하다. (내가 신생아냐?)


수채화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기까지도 이제 거의 100일이 되어 가고 있다. 아 이런 게 무서운 거다. 습관...

습관은 만들기가 어렵다. 한 번 만든 습관은 좋은 습관, 나쁜 습관 할 것 없이 고치기도 힘들다.

'100일의 습관'이라 명명해도 어울릴 법하다.




꽃그림을 수채물감으로 주야장천 그리더니, 그 시기가 지나자 이젠 과일과 베이커리(?)의 시점이 왔나 보다. 강사가 직접 그리고 글씨 쓴 샘플들을 보고 거의 세밀화에 가까운 표현기법에 감탄한다. 나는 거의 뭉개기 기법으로, 차라리 풍경화에 어울릴 법한 세심하지 못한 붓터치 기법인데 말이다.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강사는 따라 그리라고 쉽게도 말한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보고 똑같이 그리는 게 더 어렵다.


카피를 해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물 조절이나 붓터치 만으로도 천차만별의 수강생 작품들을 훑어보며 참고한다.


기껏 따라 그려보라고 연습시켜놓고 새로운 배치와 문구를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래, 역시 나만의 창작물이어야 의미가 있겠지...'

과일과 도넛 배치를 어떻게 섞어야 할까부터 머리가 아프다. 2B 연필로 그리다가 지우다가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서서히 자리가 잡힌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그림도 초안부터 너무 자기 검열에 들어가면 매우 피곤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게 된다.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게 스스로 만족스러운 끝맺음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글쓰기와 그림은 매우 닮아 있다. 모든 창조적인 작업이 그러할지 모른다.

계속 수정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망치는 종이도 여러 장 생긴다. 결국 어느 정도 허술해 보이는 부분을 눈 감아주고(?) 완성을 향해 붓질한다.


취미로 배우면서 에너지와 머리를 너무 쓰나 싶다. 하지만 최근, 두세 시간 전에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지 않거나, 현관문을 세게 닫고 나와서도 문 잠김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돌아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벌써부터 이런 조짐이 보이는 건 내가 너무 멍청해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적당한 긴장감과 스트레스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단순히 '건망증'이라고 보기엔 생활리듬이 많이 흐트러졌다는 걸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한 장에도 우여곡절을 거치고 도장 모양까지 그려 넣고 나면 그나마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내 작품에는 항상 특징이 있다. 자세히 안 봐야 이쁘다. 멀리 떨어져 놓고 봐야 이쁘다.

갖고 있는 붓 중 제일 얇은 붓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보면 삐져나오거나 거슬리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꼭 두 가지 이상씩 지적해주던 강사가 오늘은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해준다.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칭찬을 관대하게 베푸는(?) 강사와도 이젠 너무나도 친숙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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