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가 넘어 짬뽕 라면을 끓인다. 평소 식습관이 매우 좋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야식을 먹는 타입은 아니다. 결국 잠을 설치고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몸과 마음 컨디션 모두 최악이다.
평소의 생활리듬이 조금만 깨져도 이렇게 못 견딘다. 스스로 만든 규칙과 테두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불안하다. 어쩌면 제도권 안의 보수적인 타입이면서 난 왜 그렇게 자유를 갈구하고 부모에게서 일찍부터 도망치고 싶었을까?
내가 맘대로 하고 싶은 것도 생각해보면 별로 없었다. 욕망, 욕구, 욕심, 욕정(?) '욕'자 들어간 그 무엇도 없었다. 근데 뭐가 그리 자유롭고 싶었을까? 왜 부모의 관심과 간섭이 싫었을까?
무기력과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때, 일에 질리고 사람에 환멸을 느꼈을 때 그림을 시작했다. 불과 몇 달 전이지만 효과는 과연 있었을까?
앞으로 일과 내 감정의 소용돌이를 난 얼마나 뼛속까지 내려가서 쓸 수 있을까?
에세이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솔직함, 둘째는 작가 고유의 문체.
에세이는 저자의 연한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비 없는 장르의 글이다. 솔직함을 가장한 자기 포장인지,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는지는 글의 행간에서 모두 고스란히 드러나 독자에게 전달된다. 솔직하지 못한 글에 감정 이입할 독자들은 별로 없고, 솔직한 글이 지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 임경선, <<자유로울 것>>
새로운 기법을 배워보는 시간...
강사는 마스킹 액, 에탄올, 소금을 가지고 왔다. 사용법을 알려주기 위해 시범을 보여준다.
마스킹 액은 수정액으로 알면 큰 오산이다. 전혀 다른 재료였다. 액을 묻히고 말리고 나서 채색 후에 떼어내면 그 부분만 빈 공간이 남게 하는 기법이다.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떼어낼 때는 고무 재질로 뜯어지기 때문에 묘한 쾌감이 있다. 끈적한 게 굳어서 떼어질 때 끊어지지 않고 쭉 이어져서 떨어지는 모양새가 된다.
에탄올은 물감이 마르기 전 떨어뜨리면 물방울 모양처럼 되거나 물결모양이 생기기 때문에 이 또한 그림에 색다른 분위기를 낸다.
소금을 뿌리면 눈꽃 모양이 생기면서 떨어뜨린 부분의 습기를 순간적으로 빨아드린다. 물론 완전히 다 마르면 소금은 털어내야 한다.
이번엔 주제도 정해준다. '고래'를 테마로 문구를 떠올려보고 수채화 작업을 하라고 한다.
고래그림이야 여러 가지 샘플 그림을 보고 따라 그려 보지만 문구는 나만의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고래그림을 보고 '자유'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얼마나 더 자유롭고 싶길래... (지금도 충분히 자유롭게 살고 있잖아!)
결국 freedom과 liberty로 결정한다.
다른 수강생들은 한글로 아예 한 편의 시를 적어 놨지만 난 끝끝내 그러지 못했다.
난 도대체 자유에 대한 어떤 결핍이 쌓여왔던 걸까?
freedom과 liberty의 차이는 뭘까?
Freedom은 다른 누군가의 Freedom과 충돌할 때 성립되지 않는다. 당신은 담배를 필 Freedom이 있지만 담배연기를 흡입하지 않은 나의 Freedom이 당신의 Freedom과 충돌할 때 당신의 담배 필 자유는 성립되지 않는다. Liberty는 이러한 구성원 간의 상충이 전혀 없다. 나의 Liberty는 당신의 Liberty를 절대 제한하지 않는다
보수주의자들도 전통적으로 Liberty를 지지한다. 하지만, 그들은 일련의 Liberty가 아닌 Freedom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Liberty가 아닌 자유들도 옹호하려고 한다. 그들 자신이 언젠가 자신의 자유로 인해 잠재적으로 타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기 위함)이다.
'뭔 소리냐?'
이제 문화센터 수채 캘리 수업도 서서히 마무리가 되는 시간이 다가온다. 뭐든지 그렇지 않은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도 있고 헤어짐도 있고 이 시국에도 새 생명이 태어나고 누군가는 영영 떠나기도 한다.
1년 전 수강했던 학생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고 강사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꺼낸다. 그 학생은 최근 학교 수업 중에 뭔가를 작업하고 있는데, 문화센터를 다녔던 스스로가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줄 알았단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배웠던 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절망했다고 했단다.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뭔가 획기적인 방법은 없는지 재차 물었다고 했다.
강사는 그림은 잘 그릴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많이 그려보는 게 실력이 느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꾸준히 계속해볼 수 밖에는 없다. 실력이 쌓이기 위해서는 필수요소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