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가 걱정돼도 글 쓸 수 있나요?
벌써 9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반년이 지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회피 성향 때문인지, 실직 10개월 차로 접어들었다는 걸 글 쓰면서 처음 손가락으로 세어 본다. 살면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실직상태'였던 적은 없었다. 항상 바빴고 대학 때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비를 벌기 위한 고학생이었다기보다는 부모님 용돈이 성에 차지 않아 겉멋이 들었던 그 당시 아르바이트비는 몽땅 옷값으로 썼다. 성실하거나 생활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일을 안 하는 것이 익숙지가 않았다.
'코로나'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다. 코로나 사태를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작년 11월부터 실직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와도 재취업은 힘들었다.
'뭐, 설 연휴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원래 일자리가 그때쯤 확 쏟아지니까.'
이때까지도 난 코로나 사태에 대한 현실감각이 없었고 분위기 파악을 못했다.
3월이 와도 여전히 취업이 힘들었고 한순간에 장이 꼬이고,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불안함으로 몸서리치기 시작했다. 명상도 안 하면서 명상음악을 틀어놓지 않으면 초조했다. 그마저도 한 음악을 계속 듣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리고 기웃거렸다.
하지만 실직상태보다 날 더 힘들게 한 건 독서와 글쓰기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유명 작가들의 어느 시점에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는 수기를 읽으면서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지금은 처절하게 이해가 된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런 게 '무력감'이 아닐까?
하지만 나의 무기력에는 특이성이 있었다. 다른 건 다 하면서 읽기와 쓰기만 하지 못했다. 잠잠해질 줄만 알았던 코로나가 다시 확산된 8월 이 시점에, 스터디 카페에서 거의 1년 만에 글을 처음 써본다.
독서와 글쓰기 외에 다른 건 잘만 했다. (걱정하는 것도)
심지어 코로나 최초 발생 직전에 끊었던 헬스클럽(5개월 16만 원 : 새해맞이 특별기획)도 열심히 다녔다. 코로나 발생 직후엔 출입구에서 체온 재고 마스크 끼고 개인 정보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 번거로움을 아랑곳 않고 매일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했다.
책에 집중할 수가 없고 글을 쓸 수가 없고 걱정과 불안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겉으론 티 내지 않고 애써 외면하고...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부정적 에너지 소비만으로도 정신적인 피로도가 높았다. 돈벌이를 위한 노동을 해야만 피곤한 게 아니었다.
운동밖에 할 게 없었다. 아니 운동만 할 수 있었다. 몸을 혹사시켰다. 오히려 체력이 좋아졌다. 체중에 비해 체지방량이 높았다. 근력운동과 공복 유산소 운동을 하니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속옷까지 완전히 젖는데 2시간이 걸렸다. 체지방이 줄고 근육이 늘어나니 눈바디도 좋아지고 당연히 체력이 좋아졌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배웠는데, 불면을 빼고는 몸은 점점 건강해지고 마음은 시들어갔다.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자, 허탈하면서도 짜증이 났다. 길거리를 걸으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낯선 사람의 눈빛이 이상하다 싶으면 소심한 복수로 째려보기까지 했다. 실업상태가 길어지면 사람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인가. 자각하면서 무서웠다. 정신상태의 밑바닥을 찍었다.
포기는 아닌데,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자주 쓰는 말처럼 '내려놓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포기 쪽에 가까웠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포기'는 안 될 말이다. 많은 나이가 핸디캡이지만 (면접 일정을 몇 군데 잡으면서 절망도 했다. 내가 누구 비서 될 것도 아닌데 나이를 따져 물었다.) 생계유지를 위한 밥벌이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일을 하기 싫은 것도 있었다. 굉장히 이중 감정에 시달렸는데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일을 하고 있을 때 내 무의식을 들여다보면 '난 최종적으로 글을 써야 할 사람이고,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밥벌이로 그냥 하는 일이다.' 휴무일에도 불평의 마음이 있었다. '일하는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휴무날 글을 쓸 수 없잖아! '
그런데 일을 안 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상황이 되었는데 글을 못쓴다는 게 말이 될까?
코로나 사태를 직면하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그동안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겸손해질 필요가 있었다. 밥벌이를 위한 모든 노동은 숭고한 것인데, 속으로는 무시했던 내 교만을 반성해야 했다. 왜냐면 그동안 '감사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모든 일에 감사함이 부족한 위선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해외로 배낭여행을 자유롭게 하던 '코로나 이전 시대'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우울한 전망에도 난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을 갖고 있다. 때때로 곤두선 예민함이 있지만 더 이상 안달복달하는 불안함은 많이 가셔 있는 상태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걸 보면...
'모든 신은 산 사람 편'이라고 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기 마련이다.
이제 워밍업이다. 또다시 글쓰기 시작이다. 서서히 발동 걸면서 워밍업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 조절하려고 한다. 재취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두려움이 쌓여와도 영혼이 손상되지 않게!"
~ 현재의 나에게 꼭 필요한 구절이라 꽂혔는데,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