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야 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모든 건 지나간다

by 샬롯

수채물감을 언제 써봤더라?

초등학교 때 이후로 써 본 경험이 없다. 그렇다면 30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 낯설 수밖에 없다. 붓질은 또 어떤가? 마찬가지지 뭐. 붓질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팔레트에 물 조절, 물감 조절을 하며 묘한 즐거움을 느낀다. 수채물감을 쓸 때는 항상 옆에 티슈가 필요하다. 종이에 터치하기 전 한 번 더 강약 조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많아도, 적어도 붓터치가 달라진다. 이렇게 섬세한 작업이었구나.

'적당히'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게 느껴진다.


'작작 좀 해! 적당히 좀 해!'

일터에서 속으로 제일 많이 중얼거렸던 말인데...

어차피 인생은 코미디니까.


붓질에서도 인생 교훈이 나오나? 그야말로 힘을 더하는 것보다 힘 빼기가 더 어려운 심오한 진리를 발견한다. 얼씨구!


암튼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완성하고 나면, 뿌듯함을 느끼지만 티를 안 내려고 표정을 감춘다. (잘도 감춰지겠다. 표정관리가 그렇게 안 되면서)






한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몇 잔씩 마셔댔는데 올해는 그럴 수 없었다. 여름마다 있었던 열대야지만 올해는 심각해 보인다. 에어컨을 꺼둔 채 선잠에 들었는데 숨 막히는 열기에 눈을 떠본 건 처음 겪는 일이다. 혹시 내가 마스크를 낀 채 잠들었나 착각이 들 정도.


여하튼 뭐가됐든, 난생처음인 건 모두 다지.

지금 이 순간도 처음, 코 시국이라는 사태도 역사책에선 못 보던 처음, 내년이면 50인데 30대 꼰대 놈의 언행을 참느라 부르르 떨었던 것도 처음...

그렇게 따지면 모두 다 처음이지... 지금 이 순간이 찰나니까...


더위도 추위도 유난스럽게 타지 않는 체질인데 올여름이 유독 힘들게 느껴지는 건 남들도 마찬가지니까 징징댈 필요는 없다. 기력 보충을 위해 안 먹던 훈제오리를 잔뜩 장바구니에 집어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 여름인데, 마음 급한 문구로 정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모든 건 지나간다'


"모든 건 지나간다" 만고의 진리지!

이것만큼 확실한 게 또 있을까? 하지만 이것만큼 무책임한 말도 없다. 고통의 중심에 서있는 타인에게 위로해주는 말로는 적절치 않다. 내 경험상 그렇다는 말이다. 스스로 경험한 것만 체감할 수 있다.


나이들 수록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낯가리고 내향성에, 말수가 적어 친해지기 쉽지 않은 성격이지만 더더욱 타인에게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조차 신중히 하면서 살자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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