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맞선 취미

삶으로 다시 떠오르다

by 샬롯

'정신적 치료'가 필요했다.

참 거창도 하다. 그렇게 시작한 건 아니었다.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마음의 치유나 힐링은 몰입하면서 얻은 '찰나의 순간'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소설책에 빠져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쌓아놓고, 끼니 때우는 것도 잊은 채 하루 종일 책만 읽었던 때 이후로 수십 년 만이다. 그것 만으로도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그러면 됐지 뭐, 계속할 이유가...


걸어서 20분 거리인 문화센터는 한산했고 생각보다 공간이 협소했다. 원장은 작년이 정말로 힘든 한 해였다며 코 시국 운영상황을 잠깐 내비치기도 했다. 시간은 잘 배분해서 학생수가 서너 명 이상 겹치지 않도록 잘 조절하는 모양이었다. 여러 가지 강좌가 오픈된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만 수강생이 적어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원장은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저렴한 수강료를 강조하는 말을 덧붙여서 수긍하는 리액션을 취해줬다. 다른 곳도 무수히 알아보고 간 거니까 이미 알고 있었다.


'난 그림 그리고 글씨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참 아날로그적인 사람이구나'

나 자신에 대해 또 알아 간다.


관심이 있었으니 끌렸고,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유튜브 힐링 채널에서 말하길 그림 그리기를 포함한 문화적인 활동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건 수강 이후에 보게 되었다. 이런 것도 동시성의 원리? 뭐 그래서 내가 충만함을 느꼈구나, 힐링되는 듯한... 몰입이 답인 것인가?


남들이 쓸 데 없다고 말하는 것들도 본인이 원하면 뭐든 해보라고 권유했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람들 눈에는 얼마나 쓸 데 없이 보일까 생각하니 그들 입장에선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을 듯싶다. 뭔 상관인가.


수채화물감은 물 조절이 어려웠다. 물이 너무 많으면 색감이 흐려지고 적어지면 거친 선이 나온다. 뭐든 반복할수록 늘겠지. 재미를 느낀다는 게 중요했다.


남을 미워하는 데 단 1%의 에너지도 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라는 인생조언 유튜브를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 이 그림과 글씨에 몰입하지 않았으면 난 이전 회사에서 못된 사람들의 행동들과 부당함에 대해 떠올리며 치를 떨고 있었을 것이다. 계속 곱씹으면서...

왜 나는 인생이 기다림의 연속이고 치유해야 할 것들 투성인가. 그런 투정도 옅어졌다.


모든 일에 완벽한 100%는 없다. 상처와 분노는 아직 남아있다. 상처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떠올리면 마음 상하는 그 무수한 조각들...


그림 그리고 글씨 쓰는데 몰두하면서 이 시간을 치유로 바꾸고 싶을 뿐이다.

초보의 작품은 서툴고 미숙하기 마련이다. 글 올리고 난 후 다음 날 바로 후회하듯이...

하지만 실력이 쌓인 후에 이런 것들을 본다면 꼭 수치스럽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고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만큼 난 실력이 늘 거니까...




캘리그래피 강사는 기존 샘플 문구를 그대로 쓰지 말고 자기가 떠올려서 새롭게 써보라고 했다. 정 떠오르지 않으면 모방해도 상관은 없다면서 여지를 줬다.


하지만 글을 끄적이고 책을 수십 권 쌓아놓고 사는 사람이 샘플을 그대로 따라 하기는 좀 그렇지... 단박에 책 제목이 떠올랐다. 에크하르트 툴레의 책 제목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사소한 것에도 현시점의 감정이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에 살짝 헛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유리처럼 다 비치는 인간이, 이토록 종이 멘털이...


어디 가서 썩은 사과 하나라도 속여서 팔 수 있는 인간이 못되니 그게 또 한심스럽다.

뭐하나 거저 되는 게 없는, 고스란히 속내장까지 비치는 인간이 뭘 그리 센 척을 했을까. 약자를 누르고 싶은 인간들이 봤을 때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러니 괴롭히기 딱 좋은 타입이지...


결론은 타입이고 나발이고 그냥 계속 그림 그리고 글씨나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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