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87일 차

이격된 물리적 공간. 멀어진 마음.

by 백윤호

나른한 하루. 일을 일찍 마쳤다. 이를 위해 저녁 10시부터 사이트를 돈다. 그래도 일찍 일을 마치는게 더 나으니까.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니 한국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다. 호주에 와서 한국에 어떻게든 관심을 가지려 노력했다. 하지만 여기 사정이 그닥... 생존의 위협은 사람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가장 먼저 시야에 잡힌 뉴스는 워홀러 세금안 연기다. 6개월 연기했다고. 호주에서 몇 번 재검토를 하던 법안이었다. 이곳에서 재검토는 말 그대로 재검토다.

"한국에서처럼 쇼하지 않아. 이곳에서 재검토는 부지기수야."

워홀러 수가 감소되겠다며 좋아하던 친구가 말했다. 그는 한인사장이 혼나야 된다고 말했다. 너무 착취하고 있다면서.

이 소식을 후배에게 알려줬다. 그녀는 간절히 바랐다.

"되겠죠?"

"되겠지."

텍스잡을 하고 있는 그녀의 사정에선 간절히 원하는 일이다. 선거 때문에 연기된다고 하니 거의 확정일 것이다. 호주나 한국이나 선거는 정치권의 핵이다.

강남역 사건이 페북을 뒤덮는다. 웬만한 사건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어떤 파장이 일어나도 무심하다. 예전만큼 사건을 보고 놀라지 않는다. 호주에 있어 한국의 소식은 그저 감을 유지하기 위함일뿐. 그러나 강남역 사건은 충격이다. 아니. 어쩌면 보통의 묻지마 살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반응은 상상을 초월한다.

페미니즘에 반대를 하던 찬성을 하던 사람이 죽었다. 아무런 죄 없이. 이를 두고 어떤 해석들이 오가는가는 개인의 자유지만 그 희생자와 비슷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는 공감할 수 있을거라본다. 노래방에 있던 여성이 아무런 이유없이 죽었다. 같은 여성들이 얼마나 공포에 떨겠는가. 이는 간단히 공감할 수 있다. 어느날 멀쩡히 PC방에 있다가 화장실을 갔는데 누군가 와서 찌른다. 이유도 모르고. 억울하지 않겠는가. PC방에 살고 있을 우리(?)는 두렵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공감을 어디다 버리고 온 듯 막말을 쏟아낸다.

칼을 입에서 나온다. 쏟아지는 칼날에 온몸을 찢긴다. 그래도 꿋꿋이 추모한다. 온갖 음모론이 판을 친다. 진보라던 것들도 다르지 않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포에 떨고 있는 계층에게 도움을 주는 건 진보라는 것들의 기본 논리다. 이조차 없이 칼을 쏟아내는 건 또다른 범죄다.

그 사람은 왜 여자를 노렸을까. 당신이라면 돈을 뺏을 때 만만한 사람을 고르겠는가 아니면 덩치 큰 사람을 고르겠는가. 만만한 사람을 고르겠지. 마찬가지다. 그는 약한 사람을 골랐을 뿐이다. 신체적으로 약한 여자에게 무차별적인 살인행위를 저질렀을 뿐이다. 사이코패스? 그딴게 중요한가. 사이코패스들은 그럼 강자에게만 들이댄다는 것인가. 세월호 이후 모여주던 야만성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 자들이 정의를 논하고 정치를 논한다는 세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나는 무얼해야 할까. 그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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