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93일 차

이래저래 지루한 하루다.

by 백윤호

이래저래 지루하다. 으레 듣던 잔소리도 그러려니 넘긴다.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는 확신 앞에 변명이 될 뿐. 외통수가 걸린 상황은 답답함을 가져다 준다.

이곳에 와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톺아볼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점이다. 뭐랄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좀 더 객관화시켜 볼 수 있다고 할까. 그런 지점에서 내가 어떤 포지션인지 알 수 있다. 한국에 있었다면 복잡한 일상 때문에 모를 수 있던 것을 이곳에서 알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말,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알수 있달까.

하루에 가장 큰 고민이 밥이란 사실이 서글프다. 누군가가 내 앞을 지나가는 듯한 기분도 든다. 뭔가 멈춰있다는 불안함이 든다. 나이가 조금 더 어렸다면 못 느꼈을 초조함. 그것이 요새 나를 감싸는 듯 하다. 그 초조함이 만성이 되자 지루함으로 바뀐다. 지루하다. 걱정을 하는 내 모습도 혼나는 것도 모든 것이 지루하다.

기분에 좌우되는 컨디션은 몸을 더욱 악화시킨다. 피곤함이 어깨를 짓누른다. 호주란 대륙이 주는 광활함이 나에게는 극히 홀로 서 있다는 공포로 다가온다.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청소를 다니는 내내 존재한다. 하소연할 길은 없고 그저 삭힐 뿐이다.

호주에서만 그런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이래저래 재갈을 물리는 일들이 많아진다. 어휴. 물론 고민은 길지 않았다. 행동에 옮겼다. 그래도 한구석은 불편하다. 잘한 것인가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가 하려는 뜻이 제대로 전달됐을까의 문제. 때론 아무 생각없이 지내고 싶다.

이런 울적한 날에는 무엇이든 먹어야 한다. 그나마 고민하는게 밥이란 사실에 감사한다. 이거라도 고민하는게 아니 이것만 고민하는게 어디랴. 지루한 하루가 주는 나른한 안정이다. 그 안정 속에서 나는 불안하고 울적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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