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96일 차

한국에서 손님이 올 뻔 했다.

by 백윤호

외로운 도시. 시드니는 그렇다. 밤낮을 바꿔 일하는 나에게 있어서 더더욱. 아무래도 한인을 만나는 일이 어렵고 또 만나더라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니까 더욱 그러한듯. 그나마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도 믿을만한 사람들 뿐이라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게 쉽지 않다.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랄까. 특히나 만나기 어려운 건 이성. 이성을 만나도 성격상 살갑지는 않아서.

그래서 한국에서 누군가 온다고 하면 반가움이 먼저 든다. 무엇이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기분. 오늘이 그랬다. 새벽부터 온다는 소식에 일을 부리나케 하고 있던 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스케줄을 구상하던 차에 전화가 온다. 한국에서 온다는 그녀다. 그녀는 아는 동생의 친구. 이렇게 한 다리 걸쳐서 알게 되더라도 반갑다. 신기하다. 외로움 덕택에 생기는 동료의식이랄까.

"케언즈 가요."

젠장. 사실 이 친구 비행기표에 문제가 생겨 하루 시드니에 머물기로 했었다. 그래서 데리고 다니면서 투어를 해주기로 했는데 알아보니 비행기표가 잘 풀렸다고. 이래저래 설레던(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만나는게 설렌다.) 기분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래도 잘 풀렸다고 하니 다행. 미련없이(?) 케언즈로 보낸다.

한국에 있을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호주행 티켓을 보내준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얘기 하길 잘한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이곳은 외로운 도시다.

"외국인 친구 만나면 되지!"

가끔 이런 기분을 토로하면 되돌아오는 답.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만나는 건 쉬운일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깊은 얘기를 디테일하게 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 3년간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는 나와의 대화 때 처음으로 이런 말을 했다.

"아. 영어 안쓰고 한국어로 계속 이런 얘기할 수 있어서 좋다."

이 친구를 만났을 때 느꼈던 것도 외로움이랄까. 이 친구도 나름대로 한인 사회에서 사람을 만났겠지만 이렇게 한국에서부터 알던 사람을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겠지.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 말의 정도, 신뢰 등등. 세월과 관계가 가져다주는 편안함은 호주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걸 그리워 하는 거고. 이곳에 오면 커플이 자주 생긴다는 것이 어쩌면 외로움을 잊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케언즈로 가는 비행기는 이륙했다.

매거진의 이전글호주 95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