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98일 차

영어를 못 하는게 서럽다. 이것저것 지켜야할 것 투성이.

by 백윤호

호주에 있다보면 가장 어려운게 의사소통이다. 겨우겨우 영어를 알아 듣는 나에게 외국인은 공포이자 벽이다. 호의를 가지고 대하는 사람을 만나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호주인들이 대부분 친절한 편.

"무슨 일 생기면 다 나와서 도와줘. 여기 사람들 착해."

친구는 호주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말했다. 이 생각에는 동의.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나서서 도와준다. 어느 날 개가 차에 치인 사고가 난 적이 있었는데(내 차 아니다.) 그때 사람들이 나서서 도망가는 차 번호를 알려주고 개주인에게 개 상태를 물어봐주는 등의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구경만 하는 우리나라에 비한다면 더 나은 셈.

문제는 호의적이지 않을때. 빠른 영어는 아직 '어버버'라고 들린다. 오늘은 주차장에 차를 댈 때 그랬다. 로딩 존(잠시 짐을 내릴 수 있게 멈출 수 있는 곳. 15분 이상 머물지 못한다.)에 차를 댔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존 바로 옆에 다른 차선이 있었다. 내려야 볼 수 있는 희미한 선. 그 선을 못보고 두 공간에 걸쳐 차를 댔다. 아주 진상이 된 것. 문제는 여기에 차를 대야할 호주인이 내 차 앞에 차를 댄 상태. 못 나갈 정도는 아니지만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가 이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곳은 오피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댈 수 있다.)

처음에는 빠르게 말을 하던 그. 결국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하자 조금은 누그러진 듯 내 정체를 물었다. 이 주차장은 오피스 전용인데 어디서 일을 하냐 묻는다. 청소부라고 하자 알았다고 전화를 끊는 그. 이 대화도 겨우 알아들은거지 완벽하진 않다. 으으 영어.

영어를 한다는게 엄청난 장점인지 요즘 깨닫는다. 아니 축복이다. 영어를 할 줄 알면 세계 시장에 나가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영어로 말을 하면 어느정도는 알아 들으니까.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디든. 글로벌 랭귀지의 위엄이란. 게다가 시장 자체가 달라진다. 미디어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 영어는 시장과 같다. 더 넓은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벽.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하기 위한 필수 요소. 가디언이 글로벌 미디어를 지향했다는 건 다시 말해 언어장벽이 그만큼 낮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래저래 부럽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책을 편다. 미뤄뒀던 영어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영어가 발목을 잡았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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