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라는 단어가 낯설다. 생각하건대, 우리가 정의라는 단어를 자주 썼던 적은 어렸을 때일 듯하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정의'를 강조한다. 악당과 맞서싸우는 것, 악의 무리를 물리쳐야 하는 것, 주인공이 버프를 받는 것은 주인공이 '정의'롭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상식을 아주 어렸을때 부터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도 '정의'의 편에 서려고 하는 것 아닌가.
자연스러운 것도 시간이 가며 어색해진다. 정의는 그렇게 어색해졌다. 정의로움을 말하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의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다. 또는 대의명분의 여러 종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던가. 그 속에서 정의가 다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그것을 원한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권석천 기자는 그것을 자신의 글로 내보이고 있다. 대의명분이 아닌, 치기어린 소리가 아닌 진중한 목소리와 글로 내보이고 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명료한 문장과 더불어 그가 생각하는 정의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볼 수 있다. 보수지의 논설위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균형감 있고 따뜻한 시선이 새삼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다만, 책 자체는 아쉬움이 있다. 책을 쓰기위한 글이 아닌 칼럼을 엮어 놓은 것이라 큰 옷에 억지로 몸을 우겨넣은 듯한 느낌이다. 다만 옷 자체가 주는 색깔은 어울리기 때문에 크게 위화감 없이 읽을 수 있다.
개인적인 미안함과 공적인 책무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그. 작년 크리스마스 때 팽목항을 찾아갔던 권 기자의 행보는 그의 글이 행동과 일치함을 보여주고 있다.
정의라는 단어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