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유성룡 저 구자현 역/올재
1592년이란 역사 속 사건이지만 현재에 주는 의미가 있을 듯 했다. 군납비리부터 북핵까지.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듯 하다. 그래서 징비록을 꺼내들었다.
당시 조선은 군정의 문란과 계급제의 공고화로 어지러웠다. 정치는 혼란하였고 지도층은 무너져 내렸다. 같은 것을 보아도 해석이 달랐다. 해석은 정략적인 것에서 비롯됐다. 유성룡도 그러한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통신사로 왜를 방문했던 김성일이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를 올렸다. 분명 김성일의 잘못이다. 그러나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그를 두둔하고 있다. 또한 왕가의 실수를 따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유성룡도 사람일 따름이다.
그것을 감안하고 징비록을 읽었다. 그럼에도 곳곳에 현재와 비슷한 모양이 많다.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장수를 다시 기용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 명나라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책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자신이 지켜야할 고을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 백성을 놔두고 피난길에 오르는 정부까지. 결국 스스로를 지켜야했고 의병은 그러한 역할을 위해 나타난 것 같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각자도생을 위한 한 방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배층보다 일반 민중들이 위기에 강한 듯 하다.
전쟁의 참화는 끔찍하다.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아기들부터 명나라 군사들의 포악질까지. 전쟁이라는 뿔달린 악은 가장 약한 것부터 치고 들어온다. 그 서슬퍼런 시대를 다시 겪지 말자는 의미에서 징비록이 나왔다. 유성룡은 말미에 여러가지 계책과 후기를 적었다.
역사가 지나도 사회가 돌아가는 것은 비슷하다. 그때도 비리가 있었고 사회는 어지러웠다. 적을 경계하는 것을 소홀히 했으며 정부는 무능을 보였다. 메르스 사태를 비롯해 소위 '국가비상사태'에서도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듯 하여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