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털릴 뻔했다. 경찰을 만났다.
말이 씨가 된다. 하루하루 무료한 날이라고 투덜거렸다. 그랬더니 선물을 아주 그냥 한 보따리준다.
시드니에 며칠 째 비가 내리고 있다. 유래없는 폭우. 겨울임에도 비는 그칠 생각이 없다. 특히 오늘은 바람이 심하게 분다. 홀딱 젖을 만큼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나무가 부러지는 건 예삿일. 도로가 침수돼 경찰들이 정신없어 보인다. 물난리다. 곳곳에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이 복잡함을 피해 일을 하러 간다. 남은 사이트는 하나. 이 사이트는 저녁으로 미뤄도 좋지만 체력도 남고 시간도 남아 그곳으로 향한다. 차를 대러 가니 작동하지 않는 주차장 문. 결국 밖에다가 비스듬히 댄다. 문제는 이 때부터. 한참 청소를 마치고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차 문을 닫고 걸어간다. 유심히 봤다. 내 차다.
"what are you doing?"
재빨리 그 사람을 잡으러 간다. 검정 재킷에 목도리. 오지인이다. 행색을 보아하니 홈리스인 듯. 그는 양 쪽 비닐봉지에 무언갈 담아서 가고 있었다. 내가 잡으려하자 냅다 던진다. 내 목표는 하나다. 여권과 지갑. 그를 결국 잡았다. 그의 곳곳을 살폈다. 지갑과 여권이 없다. 계속 도망가려 하자 완력을 썼다. 같이 가자며 끌고 갔다.
그가 훔쳐간 건 비단 돈 뿐만이 아니었다. 여권, 지갑, 레지 등등. 돈이 될만한 것들은 죄다 챙긴 듯 했다. 심지어 열쇠까지. 사이트로 들어가는 열쇤데 무슨 필요에 쓰려는지. 그를 붙잡으며 내 짐들을 확인했다. 그때 지갑을 강탈한 오지인.
"Give me money. I need money!"
그는 이 말을 외쳤다. 내 지갑이라고 하자 그는 자기 지갑이라며 뒤로 돈을 빼려 한다. 재빨리 지갑을 잡고 뺏었다. 레지 증과 서류들을 챙기는 사이 그가 달아났다. 주위에 사람이 몰렸다. 그들은 내 서류와 동전들을 주워줬다.
"Are you ok?"
한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그는 내 상태를 보더니 경찰에 전화를 해준다며 차 근처로 가준다. 또다른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들을 말하며 근처로 이동하겠냐고 물었다. 추워보이니 몸을 녹이는게 어떠냐며. 정신이 없던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몇 마디 주고 받더니 사라졌다. 잠시 후 경찰이 왔다.
"Can you speak english?"
대충 상황을 보던 그들. 한 경찰이 나에게 물었다. 조금 할 줄 안다니 표정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Fuck."
그들은 나의 신상을 물었다. 다행인 건 목격자가 끝까지 같이 있었다는 것. 그가 범인의 용모를 설명해줬다. 경찰은 유심히 듣더니 쪽지를 준다. 전화가 오면 옥스포드에 있는 경찰서로 방문해달라고 한다. 겨우겨우 알아 듣고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때 사라졌던 호주인이 돌아왔다. 그의 바구니에 큰 수건과 옷이 담겨 있었다. 추워보인다며 입으란다.
"Thank you."
이전에 친구는 호주인들이 착하다고 말했다.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느꼈다. 사소한 일임에도 이웃이 당하는 어려움을 서로 도와주는 정신. 우리나라라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었을까. 호주에서 느낀 최악의 일과 최고의 일이다.
"잘 잡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는 왜 범인을 인도하지 않았냐며 타박한다. 정신없던 나는 그럴 새가 없었다. 여권과 지갑을 찾은게 어디랴. 그는 경찰들이 범인을 잘 잡을거라고 말했다.
없어진 건 없지만 또다시 뒷문 유리가 깨졌다. 내일은 다시 수리하러 가야 한다. 이래저래 유리와의 인연은 별로 인 듯 하다. 오늘은 맘껏 먹고 푹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