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117일 차

일이 늦게 끝났다. 한국과의 통화는 즐거웠다.

by 백윤호

토요일. 어느때 같으면 여유로웠을 시간. 그러나 이번주부터는 다르다. 스케줄이 꼬인다. 쓰레기통을 비워가는 시간이 달라졌기 때문. 여유로웠던 토요일이 바쁜 하루가 됐다. 간단한 사실이 바뀌었을 뿐인데 시간은 쫓긴다. 사소한 것 하나가 전체를 흔들고 있다. 이래저래 깨달음만 늘어가는 기분. 그래도 곧 취재를 앞두고 있다. 미룰 순 없다.

주말의 시드니는 광란의 밤이다. 술집은 술을 마시는 남녀노소로 넘친다. 각자 무언가에 취해있다. 흥이든 술이든 분위기든. 그 속에서 홀로 흑백의 사진처럼 일을 하고 있다. 깜깜한 밤은 흑백을 잘 가려준다. 시드니란 거대한 도시 속에서 나는 하나의 부속품이다. 문득 유토피아의 '외국인'이 된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고되고 힘든 일을 맡는 내가 있어 시드니가 가진 빛은 더욱 찬란해 진다. 그 빛이 더욱 빛날수록 어둠은 짙어지겠지.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렇게 빛나는 날은 어둠이 더욱 힘들다. 바 청소가 그러하다. 학교에서 열린 파티. 또래는 마음껏 놀았고 나는 그것을 치운다. 자괴감까진 아니더라도 씁쓸하다. 퇴근 시간이 길어진다. 겨우겨우 '빅 클린'을 마치고 다음 사이트로 넘어간다. 이런 나를 위로해주는 건 푸짐한 먹거리. 한 끼 제대로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 아니 풀릴 수 있다. 이것이라도 없으면 그저 잠과 일. 두 가지 밖에 안할지도 모르니까.

적적한 시간에 한국으로 전화를 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좋은 얘기부터 불쾌한 것 까지. 현재 시사부터 개인사까지. 모든 것은 얘기 꺼리가 된다. 야구도 연예인도 그저 적적함을 달래는 도구일뿐. 한국과의 통화는 현재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최고의 아드레날린이다.

목표를 다시 상기한다. 기자가 된 또래에게 쓰는 페이스북 포스팅이 눈에 띈다. 마음이 흔들린다. 내가 가고 있는 이것이 맞는지.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공부에 매진해야 되는 건 아닌지. 아니 이 경험이 나에게 어떤 선택지를 가져다 줄 것인지. 어느때보다 불안하고 염려된다. 그리고 고민된다. 그러나 상기한다. 지금은 목표에 신경써야 할 때. 목표조차 이루지 못하면 그 다음을 바랄 수 있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호주 116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