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레이디'의 현대문명 적응기?!
검정색 뿔테 안경. 빼빼 마른 손목. 긴 손가락. 잘 갖춰입은 양복. 네모 반듯하게 접은 신문을 들고 꼿꼿이 읽고 있는 모습. 뉴욕타임즈를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이처럼 뉴욕타임즈는 가디언과는 달리 잘 갖춘 그리고 굉장히 고급진 사람의 이미지를 가져다 준다. 그 이미지는 그들이 '세계 최고의 저널리즘'이며 각종 특종을 쏟아냈기 때문. 이름이 주는 아우라는 무시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의 격변은 뉴욕타임즈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종이신문 시장이 점점 쪼그라들면서 뉴욕타임즈의 밑바닥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발 밑이 위태위태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혁신은 이렇게 시작됐다.
뉴욕타임즈는 자신들의 컨텐츠를 활용할 줄 알았다. 유료구독자부터 네이티브 광고까지. 현재 언론들이 고려하고 있는 혁신 모델을 가장 먼저 실험했다. 물론 그들의 모든 실험이 성공하진 않았다. 그러나 '젊은 디지털 모바일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만큼은 다른 기성언론사들보다 한 발 앞서있다. 그 저변에는 그들이 가진 '컨텐츠' 때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세계 최고의 '컨텐츠'를 가지고 있는만큼 유료라도 본다는 자부심이 '유료화'든 어떤 것이든 과감히 도전할 수 있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뉴욕타임즈의 재정은 다른 곳에 비하면 괜찮은 수준이지 탄탄하진 않다. 그들은 '혁신'을 위한 총알마련을 위해 사옥을 팔고 인원을 감축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세계최고의 언론사도 혁신이란 기치 아래에서 뼈를 깍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네 언론은 얼마나 혁신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이 부분에서는 우리 언론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말뿐인 혁신이 아니라는 점은 '혁신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들은 자신들의 '혁신'의 한계와 장점을 분석, 앞으로의 방향을 수정, 보완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혁신보고서는 세간의 화제였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몇 가지만 언급한다. 첫째, 독자를 개발할 것. 둘쨰, 뉴스룸과 사내 비즈니스 부서 간 협업. 셋째, 소규모 뉴스룸 전략팀 신설. 넷째, 디지털 퍼스트 조직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 점검. 이 사안들은 현재 '혁신'을 외치는 언론사들이 너나할 것없이 따르는 것들이다.
가디언이나 뉴욕타임즈나 공통적으로 '모바일'과 '글로벌'화를 중심으로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시장 규모를 넓히고 이용자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접촉할 지점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다. 다만 가디언은 좀 더 캐주얼한 영국사람이 젊어지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뉴욕타임즈는 캐주얼을 입었지만 표정은 근엄한 미국 상류층과 같은 느낌이다. 뭐랄까.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비유하자면 이건희 회장이 젊어보이겠다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는 느낌이랄까. 사내 분위기도 이런 느낌을 잘 나타내준다.
뉴스룸에서 허락하지 않을거야
뉴스룸의 변화는 더디다. 조직 내 변화에 저항하고 뒤엎을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보고서를 비롯 책 곳곳에도 가득하다. 이는 우리나라 언론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이 우선시 되고 '승진'이 되는 곳. 기자들의 대우가 타 직원에 비해 유달리 높은 문화. 이 문화가 허물어지지 않는다면 누가 와서 '디지털 퍼스트'를 같이 하고 싶을까.
디지털 인재를 채용하는 것은 더 큰 비용과 설득이 필요하다.(...) 그들이 뉴욕타임즈에 합류했을 때,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지원자들이 우리보다 젊거나 이뤄 놓은 게 적어 보일지라도.
뉴욕타임즈는 현재도 혁신 중이다. 퍼블릭 에디터는 자신들의 도전과제를 명확히 알고 있다.
뉴욕타임즈에서 일하는 대부분 저널리스트의 피에는 종이 신문이 흐른다는 사실이 도전 과제 중 일부
이는 기성언론, 특히 대학언론에 해당되는 말이다. 어찌보면 '저널리즘'이라는 종교와 '현실'이라는 정치의 합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뉴욕타임즈 혁신보고서도 내부 도전 과제에 대한 측면을 강조한다. 첫째, 뉴스룸에서 디지털 기술이 지닌 지배적 위치를 인정하고 가치를 알아보며 그것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 둘째, '정교분리 관계'를 재정립하고 수용자 기반을 늘려 그것을 상품화하는 부서와 협업하는 것.
뉴스룸의 혁신은 '정치와 종교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종교는 '저널리즘'이라는 믿음일수도 언론사에서 '기자'가 최우선이라는 관습일지도 모른다. 정치는 이러한 믿음을 위해 현실을 조정, 조절하거나 구태가 된 종교를 재조정한다. 다시 말해, 저널리즘과 비즈니스, 기자 우선 주의와 디지털 인재와의 협업 문화가 여기서 말하는 '정치와 종교의 장벽'이다. 우리는 가치에 대한 상대적 우위의 재조정과 구시대의 '약관'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우리나라 언론은 이 두 가지를 잘 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전자는 '한국적' 재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듯 하다. 후자는 이제 막 시도하는 중이고. 그레이 레이디가 현대문명에 적응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의 적응기는 우리나라 언론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교훈을 허투루 넘기지 말자. 뉴욕타임즈는 내외부의 혁신에 막대한 노력과 시간,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