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평온하다. 한국이 바쁨을 미덕으로 삼는다면 이곳은 평온을 삼는 듯 하다. 사람들에게서 여유가 넘친다. 하루가 그러하다. 집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면 그때 눈이 떠진다.
빨래를 했다. 이곳은 세탁기가 집 밖에 위치해있다. 한가득 빨래를 돌리면서 점심으로 계란볶음밥을 해먹었다. 타국에 나와 있으니 메뉴 정하는게 일이다. 어떤 음식이 가능할지 잘 모르기 때문. 게다가 이곳은 자취 같은 기숙사이니... 직접 만들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귀차니즘이 자연히 발현된다. 대충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러 갔다. 정겨운 빨래집게가 등장한다. 바깥에 따로 빨래줄이 마련돼 있다. 일일히 빨래를 털어 하나하나 걸어 놓는다. 날아가지 말라고 집게까지 꽂으면 끝. 빨래집게를 쓴 것이 초등학생 때 이후로는 처음인 듯 하다. 생각보다 이런 부분은 발달이 더딘건가.
점심을 먹고나서 운동을 겸해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5시 조금 넘은 시각. 동네는 조용하다. 흔히 말하는 러시아워도 이곳은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하러 다니고 있다. 가족들끼리 바로 앞 맨리 비치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가 자신들만의 여유를 가진 삶. 동네에는 개들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곳곳에 있는 푸프른 잔디밭과 공원. 공원에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다. 호주에 온 사람들이 이곳을 그리워 하는 것은 이런 여유 때문이 아닐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있을까.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가장 큰 건 돈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일을 하며 버는 돈은 한국의 임금에 비하면 천지차이. 아무리 물가가 비싸다고 하지만 물가 수준을 뛰어넘는 임금을 받을 수 있으니 여유가 자연히 생기는 것 아닐까. 최소한의 돈이 있기 때문에 여유로운 생각이 가능하다고 본다.
조금씩 가져왔던 돈이 사라지고 있다. 집값을 내고나니 절실하다. 이제는 정말 일을 해야할 때. 평온에 너무 젖어 있다보니 일이 그립다. 아니 불안하다.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무언가 놓치는 것 같고. 이것이 한국적인 마인드에서 오는 불안인지 여유를 넘어선 해이함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일하고 싶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