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177일 차

밤. 까만 밤. 푸르른 밤.

by 백윤호

까만 밤. 구름 한 점 없고 적당히 추운 밤. 별 빛이 알알히 박혀있고 달빛이 도시 속으로 세세히 내리쬐는 밤. 이 밤을 달린다. 밤은 사람만큼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하기 싫은 노동을 해야하는 시간. 어떤 이에게는 편안한 휴식을 즐기는 시간. 어떤 이에게는 진한 알콜 속으로 몸을 대던지는 시간. 어떤 이에게는 하루를 겨우 살아남아 가는 시간. 밤은 홀로 존재하지만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밤을 꿰뚫어 일을 한다. 새하얀 빛이 내리 쬐는 낮과는 다르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린다. 밤은 무언가 감시하는 이로부터 자유로워 진다. 그것은 경찰과 같은 법을 구체화시키는 것일 수 있다. 실재하는 법은 밤이 되면 꾸벅꾸벅 졸음에 빠진다. 졸음에 빠진 틈을 타 사회적 통념이 슬그머니 장막 뒤편으로 사라진다. 텅빈 공간에는 욕망과 노동이 자리를 메운다. 욕망은 더할나위 없이 순수하다. 불콰해진 얼굴을 어김없이 드러낸다. 욕망이 슬그머니 사람들을 훑고 지나치면 그들은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동물이 되는 사람도 있다. 욕구에 충실해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투명한 창 밖으로 욕구의 향연을 지나친다.

욕구가 사라진 자리는 노동이 채운다. 사람이 없어야 하기 수월한 일들이 이뤄진다. 청소든 공사든 수거든 뭐든. 밤은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 도시가 제법 꼴을 갖출 수 있게 도와준다. 잔혹한 욕구의 찌꺼기들은 이 밤을 틈타 사라진다. 낮이 되면 도시는 다시 가장 말쑥한 옷을 입고 있다. 이 옷을 보며 사람들은 감탄한다.

'아 도시는 아름답구나.'

깊은 밤이 푸른 밤이 되는 시간. 사람들이 서서히 일어나 자신들의 일상을 시작하려는 시간. 이 시간이 제일 좋고 싫다. 그들의 밝은 얼굴이 보기에는 좋았더라. 그러나 그 모습이 내 것이 아님이 싫었더라. 이래저래 피곤이 돋는 하루. 쓸데 없는 푸념이나 늘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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