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생존은 돈과 직결된다. 자본이 있어야 '사람다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낯선 이국에서 생존을 시작했다.
아침 6시 반. 전날 거하게 술을 마셨던 후유증에 머리를 휘젓는다. 7시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 오늘부터 집 앞 스시바에서 일을 한다. 호주에 온 워홀러에게 직업에 대한 선택지는 두 가지정도로 좁혀진다. 첫째,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한인잡. 둘째, 오스트레일리아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오지잡. 스시바는 대표적인 한인잡이다.
한인잡과 오지잡은 속성이 다르다. 한인잡은 적은 시급을 지불한다. 대략 13불에서 많게는 16불 정도. 우리나라로 따지면 4000원 대의 돈을 받고 일하는 격이다. 다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길다. 주 6일, 9시간 많게는 12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해준다. 이에 반해 오지잡은 높은 시급이다. 17불에서 많게는 20불 이상. 그러나 일할 수 있는 시간이 6시간을 채 넘기지 못한다. 주 5일을 주는 곳도 거의 없을 정도.
나에게 호주에서의 직업에 대한 선택지는 두 가지 모두 존재했다. 주 3일 5시간 반, 15불 부터 시작하는 오지잡과 주 6일 9시간, 13불하는 한인잡. 한국에서부터 시작된 고민은 며칠 전 한인잡으로 결정됐다. 오지잡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투 잡을 뛰기에 발갈라는 일자리가 많은 편이 아니다.
한인잡은 워홀러에게 친절하지 않다. 트레이닝 기간으로 2주를 설정한다. 이때 시급은 10불. 4000원에서 3500원으로 떨어진다. 일을 이것저것 가르쳐주지만 단순 노동에 불과하다. 오지잡은 같은 것을 해도 시급을 깍는 일은 없다. 계약서? 없다. 다쳐도 본인 책임이다. 휴식시간? 적당히 알아서 쉬어야 한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서 보면 놀랄 일이 이곳에서는 평온하다.(물론 우리나라도 평온한 편이지만.)
나에게 일을 가르쳐 주던 사수가 손을 보여줬다. 선명히 베인 상처.
"방울토마토 썰다가 베였어요. 조심해요. 형."
칼은 날카롭다. 눈도 없다. 둥그런 물체를 베기 위한 힘이 어디로 작용할지 모른다. 그 상처는 그렇게 생겼다고 한다. 기름이 튀어도 그저 찬물에 닦을 수 밖에 없다. 정신없이 바쁜 주방. 그럼에도 사람들은 수다롭다.
점심시간은 따로 없다. 누군가 여유있는 사람이 점심을 준비한다. 얼추 1시 반이 넘어 한가해지면 바닥에 상을 편다. 식당은 없다. 목욕탕 의자에 걸터앉아 밥을 먹는다. 정신없이 먹는다. 바로 마무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밥먹기 무섭게 다시 일을 한다. 씻고, 튀기고, 만들고. 식당은 다시 전쟁터가 된다.
이 때 사장이 들어온다.
"내일 시간이 좀 빠듯할 것 같은데 6시에 나올 수 있지?"
말은 부탁이지만 거절하기 힘들다. 시급을 쳐준다고 하지만 10시간 노동이라니. 제안을 받은 직원들이 슬슬 눈치를 본다. 하지만 대답은 '네'로 귀결된다. 안 나갈 수 없다. 무슨 해코지를 당하려고. 매니저가 사장과 얘길한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직원이 사수와 얘기한다.
"20분 전에 오라는데?"
"왜? 20분 전이면 시급도 안쳐주잖아. 차라리 1시간 전이 낫지."
낯선 곳에서 온 이방인에게 낯선 땅의 주민들은 강력한 갑이다. 특히, 언어가 안통하는 주민들이야 모르고 넘어간다지만 통하는 주민들은 이방인을 노린다. 어리숙한 워홀러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한인이다. 그들은 언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가장 무서워."
호주에서 4년째 공부중인 친구가 말했다. 만난 첫 날, 술잔을 기울이며 당부하던 말. 그 말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앞으로의 노동은 계속 기록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