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밥. 잠.
간만에 비가 온다. 촉촉히 대지를 적신다. 이곳에서 비는 스쳐지나가는 손님이다. 물내가 나지 않고 깔끔하게 스며든다. 영국령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도 우산을 잘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운전은 까다로워진다. 대신 운치가 있다. 빗소리와 와이퍼소리를 들으며 도로를 달리면 그것대로 낭만이다. 일요일의 도로는 막히지 않으니까. 여유롭게 다닌다. 집으로 돌아오니 방은 텅 비었다. 일을 하러 나갔나보다. 전화를 걸었다. 생일이라며 밥사주겠다는 동생에게.
"!1시에 봐요."
오늘 하루 같이 밥 먹을 사람을 구했다.
버우드까지 차를 몬다. 5분여 거리. 멀지 않다. 그래도 멀어지긴 멀어졌다고 자주 가진 않는다. 이렇게 특별하게 밥먹을 일이 있을 때야 보지. 같이 얼굴을 보고 웨스트필드 백화점에 차를 댄다. 고기가 먹고 싶었다. 스테이크.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레스토랑은 완벽하다. 스테이크와 피자를 시킨다. 부드럽게 썰려 내려가는 스테이크와 살짝 매콤한 피자. 조화롭다. 순식간에 슥삭.
소소한 즐거움이지만 잠 앞에서는 장사 없다.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니 1시가 조금 넘는다. 곧바로 누워 잠에 빠진다. 별 것 한거 없는 것 같은데 요새들어 잠이 밀려든다. 한 달도 안남았다. 조금만 더 버티고 소소한 것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