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은 오늘도 바삐 돌아간다. 각자의 포지션에서 맡은 일을 한다. 다만 나는 색을 반 밖에 못바꾼 카멜레온처럼 엉거주춤 서있다. 새로운 포지션을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하던 '핫푸드'는 제법 익숙해졌다. 몸이 익숙해지니 주위가 보인다. '롤'을 말고 있는 동료.
"니 가서 롤 배워라."
10년 동안 일했다는 이모가 덜컥 미션을 준다. 그렇게 새로운 포지션을 배운다.
롤을 마는 건 간단하다. 재료를 순서대로 넣고 말면 된다. 다만 기계가 문제다. 롤은 '롤메이커'란 기계로 만든다. 이 기계는 힘의 강약을 잘 조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갖 이상한 모양의 롤이 나온다. '힘'만 열심히 쓰지만 결과는 꽝. 몇 번을 연습해도 실패의 연속이다. 겨우 겉모습을 갖췄다고 해도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 잘 말아진 롤은 '단단'하다. 그러나 내 것은 흐리멍텅. 카운터로 가지고 나가는 동안 풀린 롤도 있다. 참... 쉬운게 없다.
호주에 있는 한인들은 어찌됐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나고 있는 한인들은 굉장히 옛날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 어.. 마치 호주로 건너왔을 때의 한국 사회의 문화가 그 사람 내면에서 고착화된 느낌이랄까. 가령 성적인 농담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습. 요즘 같으면 남녀 차별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발언도 스스럼 없다. 심지어 외모평가에 LGBT비하까지. 주방에서 이뤄지는 얘기일 뿐이라지만 가끔은 깜짝깜짝 놀란다.
간만에 첫인상이 안좋다는 얘길 들었다. 아마도 뼈가 있는 거겠지만 그래도 첫인상 나쁘다는 얘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사실 그렇게 웃는 상도 아니라서... 처음보는 사람들과 말을 많이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인지 무표정한 때로 있을 때가 많은데 그게 좀... 굳어있는 표정이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나. 사실 이곳에 와서 더욱 조심하고 있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도 쉽사리 말을 놓지 않고 있다. 아직은 긴장을 더 해야 된다고 스스로 다짐했기 때문. 사소한 것이라도 흐트러지면 안된다고 나혼자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그리 복잡하냐고 하다만... 호주라는 나라에서 한인을 가장 조심하라고 하기 때문에... 늦더라도 두드려보고 건너려 한다.
가는 길에 햄버거 패티를 구했다. 호주인 밑에서 간단한 브런치를 만드는 친구와 장을 봤다. 토마토 하나, 빵 두 개, 소스 하나. 훌륭한 저녁이 됐다. 매일 저녁은 새로운 걸 먹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가장 고역이다. 메뉴를 바꾸는 일이 하루 최고의 고민일줄이야. 맛있게 햄버거를 먹은 지금. 다시 내일 메뉴를 고민한다. 내일 뭐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