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밥과 빈둥거림
눈을 뜬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바라본다.
'오전 8시.'
주말이 찾아왔다.
주말은 늘어짐의 하루다. 긴장이 쏙 빠진 자리에 커다란 게으름이 스멀스멀 들어온다. 그놈은 마치 고양이 같다. 슬쩍 눈치를 보며 한 발을 내딛다가도 관심을 보이나 싶으면 휙 뒤돌아선다. 살짝 정신을 다른데로 돌렸다싶으면 훅 들어온다. 밀당의 고수. 게으름은 그런 놈이다. 일요일이 주는 안락함은 크다. 전 날 술을 마시고 온 덕택에 몸은 나른해질대로 나른해졌다. 팍 풀린 긴장감은 방안을 가득 게으름으로 메웠다.
'냐옹.'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슬그머니 머리를 드민다. 하얀 털을 가진 고양이는 오드아이의 눈으로 침대를 주시한다. 어디가 더 안락한지 계산하는 것처럼. 꼿꼿히 허리를 곧추세우며 한걸음 한걸음 다가온다. 침대 위는 두 남자가 가득 채우고 있다. 그는 슬쩍 내 침대를 바라본다. 점프. 그가 올라온다.
이런 날은 행운이다. 한번에 고양이가 내 침대로 올라오다니. 슬쩍 눈을 뜨고 바라본다. 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다가온다. 자리가 빈 곳으로 들어간다. 휘휘 주위를 둘러 자신이 폭 누울 자리를 살핀다. 그리곤 내 손을 친다. 손을 뻗어달라는 소리.
"옛다."
손목 위에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둔다. 자기 직전의 자세다. 그 위로 얼굴을 내려놓는다. 그리곤 권태로운 그 표정으로 그르릉 거리며 눈을 감는다. 게으름은 어느새 동물에게 까지 전염된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방안은 계속 부지런히 게으르고 있다.
"밥 먹으러 가자."
침묵을 꺤 건 룸메이트. 이내 손을 접는다. 고양이는 '흥'하는 표정으로 침대에서 내려간다. 이내 사라진 그. 옆방으로 갔나보다. 대충 씻고 집 밖으로 나온다.
전날 먹은 술이 쑥 내려가지 않았다. 이럴 땐 해장이 필요하다. 가장 정갈하게 음식을 하는 곳을 찾아간다. 먹어본 곳 중에서는 이곳이 가장 정갈하다. 이 집의 시그니처는 부대찌개. 직접 끓여낸 육수에 햄과 라면 사리가 추가된다. 깊은 국물맛이 일품이라 가끔 생각나면 가는 곳. 우리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부대찌개를 주문한다.
"해장술해야지."
룸메이트는 바로 옆 리퀴드 샵으로 향한다. 사이다를 산다. 일종의 술이다. 알콜이 많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 다만 얼큰할 정도는 되는 듯. 술을 먹은 다음날 내가 먹는 건 오렌지 주스. 예전에 인사불성이 된 사람을 응급실에 실어간 적이 있다. 그때 의사가 말해준 비법아닌 비법.
"오렌지주스를 먹으면 술 깨는데 도움돼요."
그 이후로는 오렌지주스를 챙겨 먹는다. 밥이 나온다. 먹는다. 붉은 국물이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사라지는 국물만큼 속이 편안해진다. 해장이 제대로다.
해장을 한 후에는 다시 졸음이 몰려온다. 며칠 간은 계속 졸음과 싸움하고 있다. 회복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몸을 내준다. 게으름은 다시 방안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뜬 시간은 8시. 다시 저녁먹을 시간이다. 이번에는 간단히 중국음식을 먹기로 했다. 짬뽕과 탕수육. 적당한(?)식사다. 후루룩 먹으니 하루가 끝난다. 주말을 정말 주말답게 보냈다. 얼마만의 주말인지 모르겠다. 이 게으름과 나긋함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