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239일 차

퍼스. 여행. 비행기는 괴롭...

by 백윤호

월요일. 퍼스로 간다. 친구를 볼겸 여행을 할겸. 겸사겸사. 길게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인 결정했다. 비행기표를 출발하기 일주일도 채 되기 전에 끊었으니. 그나마 가격을 낮추기 위해 밤비행기를 이용한다.

당분간은 계속 될 것 같은데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번쩍 눈은 7시만 되면 떠진다. 습관처럼 굳어졌다. 이상하게 이 때 눈을 뜰때는 피곤이 싹 가신다. 참 곤란한 경우. 오늘 할일을 하나씩 체크해본다. 출발준비, 지원서 쓰기, 글쓰기, 독서 등등. 하나씩 시작한다.

눈을 뜨고 바로 운동을 나간다. 버우드와 스트라스필드 사이의 도로를 뛰고 걷는다. 땀을 쫙 빼고나니 1시간이 훌쩍 지난다. 집으로 들어와 마무리로 운동한다. 이제는 운동하지 않으면 하루를 채 버티기가 힘들다. 죽을 것 같더라도 20분이든 몇 분이든 산책 내지 운동을 해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니 몸이 굳어간다고 할까. 고통이 덕지덕지 묻은 몸은 움직임으로 인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아침과 더불어 밀린 글을 쓴다. 3가지 글을 쓰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급하게 지원서를 마무리 한다. 그동안 머릿속에 굴리고 굴렸던 생각을 표현한다. 한번 자리잡고 쓰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시작하면 끝은 금방이다. 탈고를 하고 나면 허무해지는 이 기분. 그래도 뿌듯하다. 미루고 미뤘던 것을 해결한 것 같아서.

잠시 점심을 먹는다. 밤비행기라는 점 때문에 이것저것 일을 볼 수 있다. 하늘이 우중충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치길 바랄 뿐이다. 저가 항공사를 이용하니 자칫 비행기가 안 뜰지도 모르니까. 그나마 뜨더라도... 흔들림은 감수해야겠지.

짐을 싼다. 2박 3일 일정이기에 크게 싸진 않는다. 이것저것 싸고 나니 어느새 출발시간. 룸메이트에게 전화를 건다.

"밥 먹고 가자."

역전에서 국수를 후루룩. 공항으로 출발한다. 무려 2시간 전에 도착했다. 티케팅을 주섬주섬하고 검색대를 통과한다. 국제선과는 다르게 검색절차는 간단하다. 다만 인도인 직원의 '쎼쎼'는 쩝. 동양인=중국인이라는 편견은 공식처럼 굳어졌나보다. 굳이 지적한다.

"남한이라고 나는."

그가 껄껄 웃는다. 어눌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 말한다. 그리곤 씨익 웃으며 '북한, 북한'을 외친다. 나참. 이것봐라. 슬쩍 흘기고 검색대를 빠져 나온다.

국내선은 국제선과는 달리 그렇게 크진 않다. 면세점이 있긴 하지만 가짓수도 별로 없고 대부분이 음식점이다. 신기한 건 크리스피 도넛매장이 있다는 것. 세븐일레븐에 기생하듯(?) 붙어있던 브랜드를 이곳에서 매장으로 보다니. 감회가 새롭다. 기념으로 커피 한잔.

비행기가 좁다. 겨우 한 사람 앉으니 가득 좌석이 찬다. 승무원들이 바삐 돌아다니며 체크한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는데 이곳에서 외모는 그렇게 평가받는 가치는 아닌 듯하다. 최소한 직업이란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승무원 기준이 꽤 까다롭고 그것이 신체에 대한 것이란 점을 미뤄보면 이곳에서는 그런 것은 없는 듯. 언피씨하게 말하면 능력 위주로 인사를 한 것 같다. 몸무게라던지 용모수려 따위의 이상한 기준이 아니라. 이젠 신선하지도 않다. 당연한 것이니까.

장기간의 비행은 피곤하다. 난 살짝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래서 뜨고 내릴 때 불안함을 느낀다. (이미 뜨면 될대로 되라라는 심정으로 맘을 놓는다.) 덕분에 느끼는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게다가 좁은 좌석에 억지로 눈을 붙이려고 하니 되려나. 뜬 눈으로 비행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도착한 퍼스.

밤비행기를 용감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친구의 차 덕택이다. 그가 마중나올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친구는 마중나왔다. 그리고 차는 퍼졌다. 시동도 걸리지 않는 차. 도착하자마자 겪는 시련. 호주에서 내가 차로 겪은 시련이 버라이어티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헛웃음만 나온다. 결국 우버를 불러 귀가.

간단히 와인과 함께 밤을 지새운다. 밀린 얘기. 알딸딸한 분위기. 잠이 잘 온다. 스르륵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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