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뉴스를 믿지 못하게 되었나
조윤호 지음/ 한빛비즈
뉴스의 시대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수십, 수백 개의 기사를 읽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팩트인가?'
우리는 기사를 믿지 못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매체, 기자 등등. 결론적으로 좌든 우든, 어떤 매체든 기사를 잘 믿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믿고 싶은 것만을 바라본다. 홍수같이 밀려오는 뉴스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조윤호 기자는 의심하라고 말한다. 우선은 기사 내에서 뜯어보는 방법이 있다. 기사 맥락은 이상이 없는지 어떤 인터뷰이를 데려다가 인용했는지 등등. 또한 기사를 쓴 기자와 언론사를 뜯어보는 방법이다. 기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은 아닌지, 언론사의 지배구조에 따라 어떻게 기사가 만들어지는지. 성역을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해당 매체가 건드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잘 살펴보면 매체가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는가란 의문점이 풀린다. 가령 '삼성'처럼.
기사를 의심하며 봐야 한다는 건 슬픈 이야기다. 독자들이 그렇게 해야 할 만큼 뉴스가 변질되고 나쁘다는 얘기니까. 저널리즘이 필요한 시대에 뉴스는 필요한 것보다는 다른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이 트래픽. 이른바 돈이다. 어떻게 트래픽을 끌어모을 수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광고와 돈으로 연결되는지가 이 책에서도 나와있다. 혁신으로 1억 원을 벌 바에는 인터넷 매체로 기업들의 삥을 뜯어 10억, 100억 원을 버는 게 더 낫다는 문장은 충격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이들이 이렇게 '나쁜 뉴스'를 만드는 곳이 된 것은 결국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생산보다 유통이 중요한 시대. 유통을 담당하는 '포털'이란 거대 권력 앞에서 언론은 맥을 못 추고 있다. 광고와 같은 수익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뚜렷하게 돌파할만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포털'에 걸리느냐의 여부에 따라 매체의 생사가 갈리는 상황.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쓸개며 간이며 내놓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됐다. 우리는 이들이 왜 이렇게 나쁜 뉴스에 목을 매는지도 알아야 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뉴스는 도태됐다. 도태된 뉴스는 더욱 나쁜 소식으로 꾸며지고 있다. 그나마 살기 위해서다. 그러나 독자들은 외면한다. 나쁜 뉴스를 믿지도 보지도 않는다. 다시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 상황은 독자들에게도 좋지 않다. 저널리즘을 지켜야 하는 시대다. 아니 어느 시대에도 저널리즘은 살아 있어야 한다. 저널리즘이 죽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대안언론도 한계 있어
물론 그 상황에서 저널리즘을 지키고 있는 언론들이 있다. 이른바 대안언론이다. 기존 매체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나 더 좋은 기사를 발굴하고 취재한다. 그들은 다른 매체들처럼 '포털'이나 '광고'에 목을 매지 않는다. 자신들이 가진 컨텐츠를 무기로 자체 유통망을 만들거나 볼 수 밖에 없게끔 만든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뉴스타파다. 뉴스타파는 후원회원이 3만명에 이른다. 또한 단독취재를 한 컨텐츠가 꾸준히 나온다. 대안언론으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안언론만으로는 힘들다. 그들이 가진 인력이나 자본은 미미한 경우가 많다. 뉴스타파가 기존 매체의 베테랑들이 대거 이직한 경우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대안언론 내에서 단독보도가 계속 나오지 않는한 '보는 사람만 보는' 매체가 된다. 이는 독자 확장에 걸림돌이 된다.
외압을 주는 독자가 돼야
조윤호 기자는 결국 독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 자본, 회사 권력에서 자유롭게 되려면 독자들이 외압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먼저 좋은 기사를 소비하고 압박을 줘야 한다. 기자들이 이를 핑계로 자신들의 저널리즘을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한편으로는 섬짓하기도 하다. 결국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없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어쩌면 독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그게 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가장 기본이지만 하기 어려운. 또는 이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일지도.
가장 기본을 하려고 하지만 하기 어려운 시기. 우리는 미디어의 새로운 미래가 태동되는 시기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