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사람 이야기 1
짧은 휴식이 끝났다. 일은 어김없이 시작된다. 몸이 익었다. 기름이 튀고 칼에도 살짝 베지만 괜찮다. 이제는 익숙하다. 칼이 무서워 겨우겨우 썰던 아보카도와 고기들을 쓱쓱 썬다.
휴식의 여운이 아침까지 이어졌다. 똑같은 일의 반복. 지루하다. 그래도 편하다. 익숙한 일을 아무 생각없이 하고 있다. 시계를 흘끔흘끔 본다. 잘 지나가던 시간이 오늘따라 더디다.
주방은 희망을 팔아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하고 있는 사람. 세컨드 비자를 위해 곧 농장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 불법 체류하고 있지만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 돈을 벌어 자기 가게를 내려고 하는 사람. 한국에 돌아가는 사람. 그리고 내가 있다.
여기서 나의 포지션은 애매하다. 20대 초중반 애들과 말을 막 터며 지내는 건 아니다. 어느정도 거리 아닌 거리를 두고 있다. 친해지고 싶지 않다라는 것 보단 존중한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13불의 저시급에서 이들을 묶어두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들은 각자의 희망을 걸고 있다. 영주권, 가게, 공부 등등. 그들에게 13불은 희망을 위한 투자요소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통용되는 곳이라고 할까.
주방에 있다보니 특히 요리관련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꽤 있다. 호주에 있는 친구가 다니는 대학이름을 우연치 않게 얘기했다.
"어? 나도 거기 나왔어."
매니저를 맡고 있는 사람이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먹다말고 쳐다본다. 대학이름을 어떻게 잘 알고 있냐며 놀라워한다.
"그 친구는 영주권 딸거래? 어디 좋은 일자리 구했대?"
바로 관심을 보인다. 이곳에서 영주권을 비롯한 비자는 좋은 미끼다. 돈보다 비자.
"세컨드 비자 떄문에 농장가는 사람들 있죠? 거기가면 돈 받기 힘들어요. 농장주인은 호주사람인데 거기 관리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이거든요. 그 사람들이 중간에 빼먹는거에요."
쉐어집 마스터에게 세컨드 비자와 관련된 얘기를 하자 그가 말했다. 그는 그래도 사람들이 몰린다고 한다.
"비자가 급하니까 가는거죠. 억울해도 해야 되는거고. 그렇게 90일을 하면 종이 한 장 줍디다. 그걸로 세컨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거에요."
다른 친구는 르 꼬르동 블루라는 유명요리학교에 다닌다. 그가 여기서 일을 하는 건 경험과 비자 때문. 학비는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슬쩍 묻자 옆에 있던 매니저가 다시 말했다.
"르 꼬르동 블루 같은 곳은 집에서 학비 안주면 다닐 수 없어. 어딜가서 일해도 학비를 댈 수 없을 정도야. 우리 대학은 그나마 그럴 수 있는데 거기는."
호주에서 갖는 희망도 공평하진 않다. 여기서도 느껴지는 무언가. 입맛이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