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달이 됐다.
아침은 밝아온다. 쌀쌀한 방. 가을도 훌쩍 다가왔다. 어둑어둑한 방을 손으로 이리저리 헤집는다. 안경을 뒤집어쓰고 수건을 챙긴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전 날의 후련함은 가시고 오늘의 답답함이 가득 찼다. 비워내려 하지만 잘 비워지지 않는다. 대충 머리를 감고 나온다.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어두운 오늘. 해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 긴 팔을 입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부리나케 출근을 해 오늘도 10평짜리 주방에서 전전날에 하던 일을 이어한다. 내 포지션은 고정적이지 않다. 하루 배워 다다음날 다시 하는 정도? 실력? 테크닉? 당연히...
그래도 전보다 스트레스는 덜하다. 허허롭게 넘기고 웃고 농담도 한다. 이너서클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지만 그 언저리에서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여기서도 어쩔 수 없는 저널리스트의 본성(?)이 나오나 보다.
주방 안은 조그마한 사회다. 반골기질을 다분히 가진 나는 이 사회를 비딱하게 쳐다본다. 이 사회에서 제일 힘이 센 사람은 매니저다. 권위는 없지만 권한은 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사람이 갈리곤 하니까. 그다음은 주방 이모. 꽤 오래 일했다고 한다. 이 둘의 관계에 따라 오늘 하루 주방의 분위기가 갈린다.
이 주방은 한편으로는 군대와 같다. 사수들은 자신들의 짬(?)을 공공연히 자랑한다. 하루는 이런 말도 들었다.
"제가 오빠일 때는 15분 전에 나와서 기다렸어요."
내가 내 표정을 봤다면 이런 말이 쓰여있었겠지.
'뭐냐 이건?'
장난 반 진담 반이겠지만 그만큼 어이가 없던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정 부분은 그랬을 거라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잘 모르는 부분을 질문할 때마다 매니저의 왈.
"야, 우리 때는 노트 가져와서 일일이 쓰면서 외웠어. 물어보는 게 어딨어. 그냥 욕먹으면서 배우는 거지."
이게 주방의 생리라며 이해시키려고 하지만 참... 이해가 안 가는 주방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곳 주방은 온갖 선입견과 뒷담이 오간다. 나 이후로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있다. 이 친구가 맹한 구석이 있다며 자기들끼리 수군덕댄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듣고 있지만 가끔은 도가 지나칠 정도. 막상 그 친구가 들어오면 그런 일 없었다면서 휙 표정을 바꾸니. 나의 태도는 더욱 공손해진다. 깔끔한 관계가 욕하기 편하기(?) 때문에. 대우는 서로가 해주는 거니까. 반골기질을 가진 나는 이 모든 게 웃긴다.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모습은 가관이다. 정은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있다.
일이 끝나고 오래간만에 운동을 하기로 했다. 3일을 쉬었으니 몸이 무겁다. 맨리 비치까지 걷고 뛴다. 몸은 정직하다. 3일 운동을 안 했다고 오른 종아리가 딱딱하게 굳어온다. 그래도 땀을 흠뻑 흘리니 기분은 좋다. 다시 내가 짠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있다.
텅 빈 집안. 장을 봐온다. 웨이즈를 오늘 받았기 때문에 가짓수를 늘린다. 바나나, 콘프레이크, 우유, 과자. 종류는 다양하지만 결국은 먹는 거다. 혼자 먹는 익숙한 저녁. 왁자지껄한 곳에서 밥을 먹었던 어제가 생각났다. 왠지 쓸쓸하다. 전화를 건다.
"왜."
아버지의 퉁명스러운 목소리. 이런저런 얘기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서로가 퉁명스러운 부자. 쑥스러운 나는 '면허증'을 핑계로 들었다.
"특송으로 보내줘.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신경 쓰지 말라며 툭 전화를 끊는 아버지. 가족이 보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