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한거야. 의지할 가족이 없는 완전한 독립"
일상이 반복된다. 하루 9시간 노동. 허허롭게 일 한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다. 글을 다듬던 손으로 닭고기를 다듬는다. 노동의 보람은 완성된 제품에서 나온다. 매번 잘 튀겨진 튀김옷은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며칠 간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익던 일에서 익지 않은 일로 옮겨갔던 시간. 제품들이 형편없을 때의 자괴감. 나의 능력까지 고스란히 부정당한 느낌. 비참함. 이 말만큼 그 때의 기분을 표현할 순 없다.
내일은 부활절, 이스터데이다. 이곳에서 이스터는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은 명절이다. 긴 연휴가 시작된다. 쇼핑몰을 비롯한 상점들도 이 날은 문을 닫는다. 특히 술집은 이 기간동안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오전부터 쇼핑몰에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오늘 사지 못하면 내일을 굶어야할지 모르니까.
'시티에서 보자.'
문득 친구의 연락이 왔다. 일 끝나고 대충 샤워를 한다. 일은 4시에 끝나지만 실제로 끝나는 시간은 4시 30분. 30분의 미덕이다. 퇴근하고 다시 집을 나서니 5시. 버스 시간은 5시 14분. 시간은 완벽하다. 6시까지 시티에서 그를 볼 수 있다. 아니 있었다. 버스가 제 시간에 왔다면.
시간표에 적힌대로 버스가 안오는 경험은 당혹스러웠다. 20분이 넘어서야 오는 버스. 약속시간은 이미 물건너 갔다. 투덜거리며 버스에 오르니 그냥 지나가란다. 늦게 와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버스는 요금을 받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 윈야드 근처에 있는 쇼핑몰 거리를 돌아 다녔다. 웨스트필드를 비롯한 백화점들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곳. 상점 안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늘이 쇼핑데이란다. 할인된 가격으로 신발을 비롯한 의류와 전자기기가 판매되고 있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어떤 제품은 많이 저렴했다. 특히 닥터마틴. 할인된 가격이 136불이니. 의외였던 것은 컨버스. 99불이 기본이다. 한국에서 컨버스는 저렴해서 많이 신는 신발인데...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차이나타운을 지나 센트럴 역 쪽으로 걸어갔다. 3년 째 호주에 살고 있는 친구. 자신이 아닌 숨은 맛집을 찾아간다며 끌고 간 곳은 한 타이 음식점. 락샤와 팟시유. 특히 락샤는 깊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로즈에 있는 쇼핑몰에서 한 번 먹어봤는데 그때와는 사뭇 다른 맛.
음식을 먹으며 호주 생활의 소회를 말한다. 친구는 나의 글을 매번 읽고 있는 애독자다. 그는 퉁명스럽게 그러나 애정어린 말을 한다.
"스시 바에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일하려 그래."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너무 깊이 생각'하기 때문. 맞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 한마디 하지 못한다. 여러 사람의 무언가를 신경쓰고 나혼자서 끙끙 앓는다. 잘못된 걸 말하는 기질은 죽지 않았지만 상황이, 사람이 말을 막는다. 당연히 쌓일 수 밖에. 일을 못하는 것도 맞다. 그럼 내가 옮겨야 한다. 스트레스 받으며 일할 필요 없다. 나에게 맞는 일, 잘하는 일을 해야한다. 만약 일을 계속 해야된다면 그것대로 허허롭게 마음을 먹으면 되는 일이다.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친구는 어려운 시간을 낸 것이다.
그가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장점(?)을 설명해준다. 굳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크단다. 어차피 한국으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고용주의 눈치를 보면서 일할 필요 없다. 게다가 27살의 나이에 권리를 찾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면 그것도 이상하다. 내 권리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찾을 수 있겠는가. 반대로 권리 위에서 자기로 했다면 편히 자면 된다. 자는 것도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자.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걸 해야한다. 호주가 허락한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