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노티스를 냈다. 이동이 시작됐다.
징검다리 휴일의 기쁨을 만끽했다. 아침이 무거워졌으니까. 무거운 아침을 낑낑거리며 들었다. 다시 출근이다. 어제의 여운은 금세 오늘의 고통으로 환원된다. 여운이 깊은 만큼 오늘이 무겁다.
출근을 하니 반기는 익숙한 주방. 다시 포지션을 옮겨 일한다. 내 포지션은 이상하리만치 정해져 있지 않다. 하루 걸러 하루 바뀐다. 바뀌는 포지션에서 실수연발. 겨우 익은 핫푸드도 이제는 낯설다. 글을 쓸 때 '낯설게하기'는 좋은 기법이지만 일을 할 때 '낯설게하기'는 욕 먹기 딱 좋다. 그렇게 오늘도 욕적립을 시작한다.
이래저래 실수 연발. 내가 생각해도 허무할 정도다. 압박은 다가온다. 일을 잘해도 못해도 먹는다. 어느 새 뒷담화까지. 쩝. 허허롭게 넘기지만 답답한건 변하지 않는다. 왜 그런날 있지 않은가. 무엇을 해도 잘 안풀리는 날. 이상하게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조선족 이모의 말도 잘 해석되지 않고 롤이 잘 싸지지 않는 날. 싱숭생숭한 마음. 그렇다. 오늘은 노티스를 내야 하는 날이었다.
맨리 비치를 떠나기로 계획한 건 친구가 귀국한 이후였다. 이곳은 '나'의 호주가 아니었다. 친구의 안정적인(?) 기반을 인큐베이터 삼았다. 더듬거리며 잘 보이지 않은 눈으로 어렴풋이 호주를 봤다. 손으로 더듬거리며 이것이 눈인지 코인지 입인지 확인했다. 이제 제법 눈이 잘 보인다. 호주의 얼굴을 겉핥기 했다.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동은 필수였다. 얼굴에 머물러 있는 '나'를 그의 몸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래서 움직이기로 했다.
이동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집과 직장이다. 이 둘은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 운 좋게도 직장은 빨리 해결됐다. 면접을 보던 사장은 말했다.
"최대한 좋게 노티스 내고 기간 알려줘."
일이 끝난 후 노티스를 냈다. 노티스 기간을 묻는다. 2주에서 3주 사이면 좋겠다고 했다. 매니저는 한참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노티스까지 하면 6주 일하는건데 너무하는거 아니냐."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서로 피곤했을텐데. 그러나 대답은 다르다.
"너무 하죠. 그런데 좋은 기회라서 어쩔 수 없었어요."
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일이 여기 있는데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돈을 벌고 싶었다. 좀 더 역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 상의해보고 연락줄께."
한창 한국에 있는 후배와의 비즈니스(?)에 관련한 얘기를 나누던 중 문자가 온다.
'이번주까지 나와도 돼.'
배려인지 배척인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빠른 노티스 기간. 나로서는 좋은 기회다.
"독립했잖아. 나를 위해 움직일줄 도 알아야지."
호주에 있는 후배와 통화하면서 한 말이다. 한국인들의 '나이서열'문화에 진저리 난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딱 잘라 얘기하라고 조언했다. 호주까지 와서 그런 것들에 휩쓸려 얼마 남지 않은 비자 기간을 소비할 순 없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사람들을 위해 내 시간을 값어치 있게 쓰고 싶다. 지금의 시간이 다시 내가 생각하는 목표로 이끌어 줄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