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치 않은 사람을 만났다. 그는 눈이 빛났다.
눈을 감았을 뿐인데 새벽이다. 환히 켜져 있는 불. 깜빡 잠이 들었다.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찾는다.
'2시 33분.'
새벽에 문득 잠이 깼다. 방바닥을 쳐다보니 가관이다. 공부하려 꺼내놨던 영어책은 널부러져 있다. 지갑, 배터리 충전기, 보조배터리가 어지럽혀져 있다. 주섬주섬 한쪽으로 챙겨둔다. 허리를 든다. 불을 끈다. 안경을 벗고 다시 잠을 청한다.
'4시 55분.'
다시 잠에 깼다. 잠시 화장실을 갔다왔다. 어중간한 시간.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전날 켜놨던 다운로드가 완료됐다. 고민한다. 볼까, 잘까. 다시 자자. 이따 있을 인터뷰 때 피곤해하면 안되니까.
'7시 30분.'
잠에서 깬다. 시간이 갈수록 잠에서 흠칫 깨는 시간이 는다. 이유는 모른다. 잠이 부족해서는 아닌 것 같고. 며칠 째 달고 사는 감기 때문인가. 아니면 전날 먹었던 약 기운 때문인가. 여러 의문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널부러져 있는 영어 책을 정리한다. 지갑을 올리고 바닥을 정리한다. 이제 준비할 시간이다.
아침부터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다. 일요일 아침. 휴일을 시끄럽게 두드리는 물방울 소리.
'후두둑.'
바닥을 경쾌하게 때리며 샤워는 존재를 드러낸다. 드러낸 존재에 몸은 흠뻑 젖어든다. 묵묵히 수건이 젖은 몸을 위로한다.
'8시 30분.'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나온다. 당직을 마치고 들어온 셰어마스터가 놀란다.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묻는다.
"어디가요? 이시간에?"
"시티에 갑니다."
"어휴, 이른 시간이네요. 잘 갔다오세요."
거리는 한산. 사람이 없다. 버스를 기다린다.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10시에 한호식품 앞에서 봐요."
면접을 보기로 했던 사장의 말. 그렇다. 오늘 나는 면접을 보러 간다.
스시 바에서 일하면서 겪은 스트레스는 차치하고 내 목표와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호주에서의 생활은 '돈.' 돈을 벌어 한국에서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것. 취업 준비를 위한 군자금이라고 할까. 나에겐 그 군자금이 절실히 필요했다. 많이 벌기 위해 선택한 건 청소. 다행히 친구의 지인이 청소업체 사장이다. 친구는 신신당부했다.
"너 정말 열심히 해야돼. 이 형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문득 이 친구의 판단이 궁금해졌다.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 궁금증을 안고 버스를 탄다. 10시. 약속 장소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미안합니다. 조금 늦었죠?"
커피를 한 잔하자며 나를 데리고 간다. 커피숍에서 간단히 커피를 시키고 얘기를 나눈다. 면접에서 으레 나누는 얘기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호주와서 일하고 있어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이건 자부할 수 있어요. 목표가 있었거든요. 가족이 생기니 더욱 열심히 하고 있고요. 잠 아껴가면서 목표했던걸 이뤘어요."
자신의 얘길 꺼내면서 눈이 반짝 빛났다. 근래 만났던 몇 안되는 사람이다. 자신의 얘기를 자신있게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하는 사람. 금세 인터뷰를 시작했다.
-영주권을 3년 만에 취득하셨다고요?
"그런 얘기를 했어요? 좋게 봐주니 고맙네요. 열심히 하다보니 이룬거죠. 전 호주가 좋거든요."
그는 나의 목표를 물었다.
-기자요.
"아 그럼 한국 정치에 대해 잘 알겠네요. 모국이기도 해서 관심은 가거든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가끔 그런 얘기 들으면 재밌겠네요."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가 있겠어요.
"다른 분야에서 하다 온 사람이잖아요. 저보다 어린 사람이어도 배울게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저도 발전하는 거고요."
한참 자신의 얘기를 꺼내며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그럼 일은 언제부터 하실 건가요?"
사정을 말하니 그는 흔쾌히 괜찮다고 말한다. 운전을 할 줄 안다고 하니 더 좋아한다.
"돈을 목표로 했다면 그 목표보다 더 크게 버실 수 있을 거에요. 대신 열심히 한다면요. 호주에 와서 워홀러가 배울 수 있는건 독립심이죠.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해야 되잖아요. 저도 몇 년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봤어요."
도박하던 사람, 이성 관계로 힘들어 하던 사람 등등. 처음 목표와는 달리 무너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목표가 없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거짓말 안했으면 좋겠어요. 어렵거나 힘들면 제가 도움 드릴 수 있을 때 까지 도움 드릴테니까."
그는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 아니면 사람을 잘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도 믿고 일을 맡길 사람이 필요하니까. 아무래도 지인들을 통해 알게되면 그만큼 신뢰가 간다고. 그는 신뢰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럼 다음에 뵙죠."
일은 잘 풀렸다. 그는 나의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페이를 맞춰준다고 했다. 내심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의 일이 내심 기대된다.
면접을 마치고 비를 피해 잠시 PC방으로 갔다. 공교롭게도 인터뷰를 한 장소와 PC방이 바로 코 앞이었다. 잠시 게임과 인터넷을 하니 1시가 조금 넘었다. 겸사겸사 삼성을 들러 이어폰을 사기로 했다. 하지만 삼성 숍이 문을 닫았다. 구글 맵은 열었다고 표시돼 있는데... 구글신도 가끔 실수를 하지...
2시간. 삼성 이어폰을 구하기 위해 시티를 돈 시간. JB HI-FI는 호주에 있는 전자마트다. 우리나라 하이마트 같은 곳. 그곳을 뒤졌다. 타운홀부터 시작해서 윈야드, 센트럴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그러나... 문이 닫혀 있거나 삼성 이어폰을 취급하지 않거나. 2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보내면서 QVB 안을 처음으로 들어갔다. 안은 웅장하고 멋있었고 일렉트로닉 관련 숍은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신기한 것을 목격했다. 우리나라의 '불신지옥'과 같은 유세.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더니... 역시... 이런 것도 비슷하구나. 잠시 친구를 만나 집얘기를 했다. 막상 첫 적응을 했던 맨리를 떠난다고 하니 기분이 묘하다. 준비를 하는데에도 이런데 막상 떠나면 어떨까.
그래도 떠나야지.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