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가나 배울 것은 있다. 그리고 오늘도 배웠다.
첫번째 깨달음. 나는 주방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손으로 하는 일은 정말 더럽게 못한다. 밥을 죄거나 빨리빨리 썰거나. 전혀 못한다. 물론 하면 늘겠지만... 한 포지션을 3일에 한 번 꼴로 하니 늘 수가 있나.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이제 3번째 해보는 박스 포지션. 박스는 초밥이나 스시, 롤을 만들거나 담아내는 포지션이다. 얼마나 빨리 만들어 예쁘게 내보내느냐가 포인트. 그리고 여기서 나는 허물어졌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기억의 끝을 붙잡는다. 만드는 법을 붙잡아 머릿 속 꼭대기에 세운다. 겨우겨우 하나를 말면 다시 암흑. 질문은 이어진다. 하지만 바쁜 아침에 질문이 가당키나 하나. 핀잔과 욕으로 돌아온다. 뭐... 어쩌랴... 묵묵히 하는 수 밖에. 익지 않은 일을 익은 것처럼 해야하는 아이러니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래저래 고달프다.
두번째 깨달음. 리더는 역시 중요하다. 이래저래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은 중요하다. 주방도 마찬가지. 일의 순서를 원활하게 돌봐주는게 필요하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동선을 만들어주는 일. 오늘 주방은 그것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박스에서 버벅대던 나부터 시작해 외부에서 갑자기 찾아온 다른 지점 매니저까지.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게다가 뜬금없는 살몬 썰기.
"우리 가게 꺼랑 여기 꺼랑 해줄께."
갑작스런 일의 끼어듬은 정체를 불러온다. 여유롭게 해야하던 일들이 모두 스탑. 지체된 시간만큼 우리의 동선은 꼬여간다. 정리를 해줘야할 리더는 실종. 어휴.
세번째 깨달음. 약자에서 생각해야 된다는 것. 내가 일을 하면서 오랜만에 약자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강자였던 적은 없지만 최소한 능수능란한 일꾼(...)이었긴 했으니까. 하지만 전혀 생소한 분야의 일을 만진다는게 이렇게 어렵고 약해질 수 있다. 마치 100m 달리기 1등에게 공부 1등을 해보라고 시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낯선 일의 방식이 나에게 익숙치 않다. 그러다 보니 날아오는 핀잔.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날아온다. 실력좋은 사람까지 뭐라고 하니 미칠지경. 화는 머리 끝까지 나지만 넘긴다. 뭐 내가 큰소리 칠 수 없는 상황이니.(하지만 기억은 해두마.)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 것일 수 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뼈아프다. 다시 한번 약자를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느낀다.
하루의 주방에 여러가지를 느꼈다. 이젠 다 배웠고 얻어갈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배움은 끝이 없고 삶은 다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