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두기 하루 전. 담담한 하루.
눈을 떴다. 지각이다. 급하게 옷을 챙겨입고 간다. 하루를 푹 쉬고 일어났다. 코감기는 며칠 째 낫질 않는다. 약을 먹고 잤더니 기운이 꽤 감돌았나 보다. 그래도 코는... 아직도 감기.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주방으로 가니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 현장을 목도했다. 자연스레 인사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장난스레 주방 이모가 말한다.
"왜 또 늦어! 가기 전에 욕먹고 싶나!"
뜨뜻한 라면으로 배를 채운다.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새벽부터 아우성이던 배가 잠잠해진다.
일은 똑같다. 하지만 그만둔다는 얘기가 퍼져나간 주방에서 나는 '노터치'가 됐다. 크게 모나지 않게 일을 한다. 몇 번 신경을 긁어대는 소린 있지만 그냥저냥 넘어간다.
이전에 일을 하면서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사람이 좋기도 했고 일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각각의 이유가 컸기 때문에 그만둬야 했다. 나랑 맞지 않은 일이란 깨달음으로 그만 둔 일도 있다. 그런 일은 후회가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일은 애매하다. 다시는 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남지 않을만큼 매정한 것도 아니다. 혼란스럽다.
"저 곧 결혼해요."
이제 갓 25살이 되는 동료는 아무렇지 않게 결혼을 말한다. 그녀가 결혼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비자때문이다. 남자친구가 이곳에 살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망설임없이 호주 잔류를 선택했다. 사랑인건가. 아니면 본인의 의사인건가. 분명한 건 그녀는 결혼한다. 비자 때문에.
매니저는 이런 얘기가 불만인 듯 했다. 요즘 애들이라는 단어를 붙여가며 결혼의 중요성을 말한다. 쩝. 주방의 시간대는 저마다 다르다. 내가 서 있는 시간대는 90년생이 바라보는 현재. 매니저의 시간대는 70년생의 현재. 바뀌지 않는다. 한인들 사이에서 변화가 얼마나 있겠는가. 문화는 타국에서는 융합되지 스스로 발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화변화처럼 큰 변화가 없다. 그걸 다시 한번 느낀다.
지난 밤, 우리 학교 선거 관련 이슈로 잠을 덜 잤다. 총학생회장이 되느냐 마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복마전. 쫓고 쫓기는 자의 추격전. 총학생회실을 둘러싼 암투. 드라마를 현실에서 보고 있으니 재미지고 답답하고 짜증나는 이 버라이어티한 기분. 그저 독립언론이 가져다 주는 기사를 퇴고보는 선에서 내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건 이것대로 따로 정리해야지.
이런 생각을 정리하며 맨리비치로 다시 나간다. 조금 푹푹찌는 하루. 비치에는 주말을 맞아 사람들이 넘친다. 그들을 보며 일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린다. 자연이 가까이 있다는 효용을 제대로 쓰고 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같이 여행을 하자고 수줍게 던졌다.
"돈이나 송금해."
츤데레는 츤데레다. 아버지나 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