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23일차

친구가 떠났다.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by 백윤호

친구가 떠난다. 3주간 같이 생활했던 그래서 고생했던 내 친구가 떠난다. 이 친구는 굉장히 잠에 예민하다. 조금만 소리에도 금방 눈을 뜬다. 덕분에 코골이가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줬다.(정말 모르고 있던 사실이다.)

그와 저녁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선다. 셰어하고 있는 집에서 무언가 해먹기는 골치아프다. 치우는 것도 일, 해먹는 것도 일, 눈치보이는 것도 일. 여러가지 일일일들이 발걸음을 밖으로 옮기게 한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다만 좀 더 맛있는 걸 먹어보기로 했다.

집에서 쭉 올라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나오는 일식레스토랑. 10불 정도 되는 가격에 라멘과 돈부리를 시켜 먹었다. 호주에서의 마지막 식사. 그가 정말 간다.

아침은 비가 촉촉히 내렸다. 호주에서 처음 본 비오는 날씨. 기분이 묘하게 울적하다. 일을 가기 위해 집을 나오면서 친구와 작별 인사를 했다. 여기에 다시 돌아오면 그가 없으리라.

수요일은 일터가 바쁘다. 내가 일하고 있는 스시바는 '벤또'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조리해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벤또' 주문은 넘친다. 일터가 바쁠수록 사람들의 날은 바짝 선다. 이제 겨우 익어가던 일이었다. 한꺼번에 밀려오는 주문에 엉망진창이 된다. 한 소리 먹었다.

일을 하면서 한소리 먹는 일은 다반사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쿡쿡 가슴에 찔린다.

비행기 탔겠지.

정말 혼자가 됐다는 울적함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괜시리 한숨만 푹푹 나온다.

일이 끝나고 돌아왔다. 신발장에는 내 공간이 늘었다. 공간이 커진만큼 마음은 허하다. 같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그가 떠났다. 이젠 정말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울적한 기분을 떨치려 맨리비치까지 발걸음을 옮긴다. 가는 도중 케언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이제 진짜 혼자 있는 것 같다. 호주생활 지금부터 시작이야."


마치 나에게 다짐하듯 동생에게 말한다.

맨리비치에는 어김없이 사람들도 그득하다. 그들 중 하나가 되기로 했다. 백사장 위에 엉덩이를 댔다. 부드러운 백사장과 들려오는 파도소리. 울적했던 기분이 사그라진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했다. 친구가 남긴 유품을 한잔 마셨다. 레드와인의 쌉싸름함이 입안을 감돈다. 뭐... 볶음밥과 어울리는지는 차치하고...

본격적인 호주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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