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내 역할이 바뀌었다. 생존의 고단함이 더 짙어졌다.
역할이 바뀌었다. 내가 담당하던 핫푸드에서 롤메이커로. 2주동안 배우던 일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일에 투입됐다.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꽤 긴 시간을 요한다. 특히나 익숙치 않은 주방일을 배운다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겨우겨우 외우고 칼질하는 것이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바뀐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이 없다.'
롤메이커를 하는 친구의 휴식을 위해서는 누군가 한명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 였다. 딱히 반박할 이유도 없지만 내심 씁쓸했다. 처음부터 이런 조짐은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노리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핫푸드에 남고 싶다는 나의 의견은 묵살됐다. 매니저의 결정은 단호했다.
이미 결정된 마당에 잘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사수의 교육을 들었다. 스시 바처럼 테이크 앤 어웨이를 중점적으로 하는 곳은 '스피드'가 생명이다. 얼마나 빨리 단단한 롤을 내보내는 것인가가 관건. 모양이 이쁜 것 보다 제 시간에 많은 양이 필요했다. 당연히 버벅거리는 움직임에 날라오는 욕설. 쩝. 어딜가나 일을 못하면 욕부터 나오는게 습관인건가. 나야 오늘 처음 하는 것이니 욕먹지는 않았지만 이전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친구는 이래저래 욕먹으며 일했다. 갑자기 생존의 고단함이 밀려왔다.
몸은 덜 힘들지만 왠지 더 피곤한 하루. 가벼운 옷차림으로 조깅에 나섰다. 이곳은 4시 이후에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한국에서 4시면 피곤에 절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시계만을 하염없이 바라볼 시간. 이곳에서 4시는 취미생활을 하며 삶을 누리는 시간이다. 이곳에는 나처럼 조깅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유모차를 끌고 운동하는 남자들이 부지기수. 반바지, 민소매 티에 썬글라스를 쓰고 한 손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모습에서 한국과는 다른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아니 저렇게 되어야 맞는거겠지.
공원에는 가족단위로 나와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특히 이 동네는 시드니에서도 부촌으로 유명하다. 바다가 가깝고 조용한 동네이기 때문. 바다 가까이에는 개인 소유의 요트가 정박해있는데 수가 제법 많다.
조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도마뱀을 봤다. 호주에서 도마뱀은 보호받는 파충류다. 도마뱀을 잡았을 시 3300불의 벌금이나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해당 내용의 표지판이 곳곳에 꽂혀있다. 뿐만 아니라 야외에서 살충제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해두고 있다. 가끔 길을 걷다 손가락만한 바퀴벌레나 쥐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대적인 '해충박멸'을 시행했을텐데. 뉴질랜드는 호주보다 더 철저하다고 하니 한번쯤 가보고 싶다.
집으로 오는 길에 coles에 들렸다. 기다란 바게트 빵과 염소 젓으로 만든 치즈를 구입했다. 빵을 조금 잘라 치즈를 발라먹으니 맛이 제법이다. 역시 빵은 서양에서 먹어야 제 맛인건가...
생존의 고단함은 시원한 자연과 새로운 경험으로 날아갔다. 일과 쉼이 균형잡힌 하루. 호주에서 느끼는 최고의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