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49일 차

보양식을 먹었다. 재미없는 글이라 지적받았다.

by 백윤호

낮밤을 바꿔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 제대로 낮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길어진 밤. 그 속에서 땀흘려 일하는 나. 밤바다와 새벽 어스름의 도시. 이제는 익숙한 광경. 어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태양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걸려온 전화. 친구다.

"저녁이나 먹자."

눈 감고 일어나니 4시. 씻고 밖을 나온다. 버스를 타고 도착하니 30분 늦었다. 확실히 맨리는 시골. 좀 더 일찍 나와야겠다. 졸린 눈을 비비고 같이 간 곳은 차이나타운에 있는 훠궈집.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한다.

훠궈는 우리나라의 샤브샤브와 비슷한 요리다. 빨간 빛이 감도는 국물에 고기나 어묵을 담가 먹는 요리. 깨로 만든 소스에 찍어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푸짐하게 시켜 담궈먹는다. 맛이 제법 괜찮다. 입맛에 잘 맞는다.

"준수 결혼한대."

고등학교 동창이 벌써 결혼이란다. 슬슬 주위에 결혼소식이 들린다. 이르다면 이른 나이 27. 가족을 갖게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아직까지 27이란 나이가 실감이 나지 않던 나는 고개만 끄덕인다. 그들의 심정이 내심 궁금하다. 3자가 들어도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지는데 그들은 오죽할까. 결혼을 결심하기 까지 걸린 시간만큼 그 무게감은 더하랴.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 총선얘기가 나온다. 그는 '기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기레기들이 너무 많아. 여기도."

자극적인 제목을 걸어두고 클릭수를 유도하는 건 만국 공통인가보다. 저널리즘의 위기가 머나먼 호주에서도 느껴진다.

"xxx별로 안좋아 하는데. 뉴스타파는 즐겨 들어."

그는 한 언론사를 좋아하진 않는단다. 그 이유를 묻자 나도 알고 있는 기사하나를 얘기한다.

"예전에 워홀로 일하던 애들이 거기에 기사를 기고했거든. 너무 자기네들 관점에서만 쓴거야. 근데 걔들이 워낙 일을 못했다고 악명이 높았어. 나중에 고소당했을걸?"

얘기는 내 글까지 넘어온다.

"니 글도 너무 재미없어졌어. 여기서 왜 캐쉬잡을 하는지 알아? 그냥하면 세금을 떼가거든. 세금이 꽤 높아. 그럴거면 캐쉬잡으로 하는게 나으니까 서로 하는거야. 윈윈하는거라고."

좀 더 넓게 봤으면 좋겠다는 의견. 그가 내 글을 전부 읽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충고이리라. 그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본다. 내가 '기레기'가 안되게 긴장을 준다. 이 친구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술이 한잔 생각나지만 절제해야 한다. 저녁에 다시 일을 해야 되니까. 하지만 얘기들은 술안주로 삼을 거리만 나온다. 특히 정치. 그는 총선 투표를 안했다고 한다.

"뭐하러 해. 당장 가서 살지 않을텐데."

이곳에서도 총선은 그저 '한국의 쉬는날'정도로 인식된다. 그럴수 밖에 없다. 지역구 위주의 총선이 이들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는가. 개인적으로 비례대표와 같이 특정 계층 위주의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재외국민들과 관련된 법안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라던지.

"그러면 당장 투표하지."

그나마 대선은 이곳에서도 회자된다. 아무래도 대통령을 정하는 일은 지역과 관련없이 국가적인 의제니까. 영주권을 획득하더라도 대선만큼은 꼭 참여하고 싶다고 한다.

"대통령을 뽑는 것도 일이야. 지난번에는 1번을 뽑았는데 후회한다니까."

이렇게 정치를 못할 줄 몰랐다는 그. 나도 맞장구친다. 나와 친구는 생각하는 이념이 다르다. 그래도 한 사안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바라볼 줄 알고 비슷한 점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친구인가.

식사 후 간단히 차를 마셨다.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친구와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그래도 여기 친구 있는게 좋다. 한국어만 써도 되고."

담배 한 개피를 피며 그가 말했다. 왠지 한 쪽이 찡했다. 그도 이곳에 있으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모국에서 온 친구가 얼마나 반가웠을지 짐작이 안간다. 투덜투덜하지만 그래도 속이 깊은 친구다. 매번 내가 하나씩 배워간다.

집으로 가는 길.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빵처먹지말고 좋은거 챙겨먹어.'

퉁명스런 문자에 느껴지는 걱정. 그의 투덜거림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고된 하루에 큰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