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손에 익었지만 아직 멀었다. 농장생활을 엿들었다.
새벽 1시. 일을 시작한다. 커다란 베큠을 맨다. 어깨로 매는 청소기인 베큠은 스피드가 생명이다. 왼손으로 얼마나 힘을 줘서 헤드를 컨트로할 수 있느냐. 이것이 관건. 카페트에 붙은 먼지와 쓰레기를 빨아들인다. 내가 맡은 포지션 중 가장 큰 품을 들이게 한다.
내가 맡고 있는 사이트는 총 4개다. 골프장, 헬스장, 음식점, 펍. 골프장은 주 5일 청소지만 나머지는 7일 연속이다. 쉬는 날? 없다. 잠깐 잠깐 눈 붙이는게 쉬는 것. 체력관리와 운동은 필수다. 잠을 깊고 짧게 자는 법은 알아서 연마된다. 지난 1주일이 그러했다.
청소는 크게 4가지로 나눠진다. 베큠, 맙, 화장실, 유리창. 이것을 마스터하면 한 사이트를 온전히 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 사이트를 혼자 했을 때 시급이 2배로 뛰기 때문. 주당 2000불도 가능하다는게 청소다. 시티에서 돈을 벌기위해서는 청소가 제일 좋다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다.
이제 1주일이 갓 지난 청소꿈나무는 오늘도 베큠을 돌린다. 100여평 되는 공간을 청소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3시간 30분. 두 명이 투입된다. 헤드를 어떻게 빼느냐에 따라 청소가 잘되느냐 못되느냐가 갈린다. 처음에는 3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청소를 하다보면 어깨와 목이 아파온다. 한쪽 방향으로 밀고 가야하기 때문. 여러차례 어깨를 푼다.
한참 베큠을 밀면 맙이 기다리고 있다. 맙은 우리나라의 마포걸레. 좌우로 부드럽게 닦아내는게 포인트다. 빡빡 힘을줘 닦을 필욘 없다. 어차피 약을 써서 하기 때문에 살짝만 닦아도 금방 깨끗해진다. 예전 습관이 남아서(학교 다닐 때는 빡빡 닦는게 미덕이었다.) 매번 지적 받는다. 그래도 요새는 비슷하게 동선을 그리니.
청소는 시간이 돈이다. 한 사이트를 빠르게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에게 있어 차는 돈과 직결된다. 얼마나 최단루트로 가느냐. 그것이 수입과 직결된다. 2시간이 걸리는 베큠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지적받았다. 1시간 10분 내로 줄이라는 것. 더 익숙해지면 된다며 격려를 하지만 내심 제법 빨랐다는 흐뭇함이 와르르 무너진다. 돈과 관련돼 있으니 뭐...
청소 일의 특성상 남자들과 같이 이동한다. 그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오늘 같이 이동한 슈퍼바이저는 호주 정착을 위해 돈을 벌고 있단다. 농장에서도 일해봤다고 한다. 농장 생활을 묻자 피식 웃는다.
"오전에 350불 벌었지. 돈은 정말 잘 벌었어."
농장도 돈을 보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아니 거진 돈을 위해 온다. 농장일은 개인별과 팀별로 나뉘는데 개인별은 말 그대로 개인이 한 만큼 돈을 받는 것이다. 팀별은 팀이 모아온 수확량을 똑같이 분배하는 것. 그는 개인별로 오전에만 350불을 벌었다고 말했다.
"대신 한동안 쭈그리고 앉아있질 못했지. 거의 허리를 못 펴거든."
하루 350불. 1주 2000불이 넘는 주급. 그 많은 돈을 어디에 놓았냐고 묻자 허허 웃는다.
"술 먹었지. 농장 근처에는 할게 아무것도 없거든. 장보러 가려고 해도 차가 있어야 하고. 대신 술집은 진짜 많아. 다 술먹으러가."
하루 일을 하고 끝나면 술을 마시고. 한인들끼리 같이 살다보니 언어의 장애도 없고. 여러모로 돈쓰고 놀기에 좋다고 한다. 일이 고되지만 그만큼 돈이 들어오니 쪼들릴 일도 없고. 흥청망청이 뭔지 제대로 알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 그때 날린 돈이 얼마인지원."
농장일은 결국 타이밍이다. 수확철을 잘 노리고 들어가야 일이 끊기지 않는다. 물론 수확철이 아닐 때에도 일이 있지만 그것으론 농장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
"이동하는거지.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일하고. 거기선 비일비재해."
농장을 하고 오면 웬만한 일은 편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얼마나 고된 일이길래. 살짝 돈에 솔깃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는다. 청소에 적응이 시급하기에 다른 곳에 눈 돌릴 틈이 없다. 어두운 밤거리를 뚫고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