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 아이한테는 '시간'을 준다
- 스스로 화를 풀 시간이 필요할 테니
반짝이는 9살, 귀요미는 7살.
저는 형제를 키우고 있는 16년 차 워킹맘입니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엄마예요"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엄마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오늘도 하루 종일 재미있게 같이 놀았는데?
귀요미 병원 때문에 하루 휴가를 냈다.
오전에 귀요미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와서 집에 돌아오니 반짝이가 외친다.
"와~오늘은 엄마랑 하루 종일 놀 수 있다"
"그래. 오늘 하루 종일 놀 수 있어"
아직까지 나랑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나도 아직 사랑받고 있구나 생각하니 기뻤다.
"우리 뭐하고 놀까?
"좀비 놀이요. 제가 먼저 좀비 할게요. 좀비는 큰방에는 못 들어가고 다른 곳은 다 갈 수 있어요"
"켁. 켁" 하며 좀비 흉내를 내면서 쫓아오는 반짝이가 정말 무서워서 사력을 다해 도망 다닌다.
반짝이, 귀요미, 나.. 이렇게 셋이 돌아가면서 좀비를 한다.
"엄마가 좀비 할 때가 제일 재밌어요"
아이들을 잡을 듯 말 듯 적당한 긴장감을 주면서 아이들한테 승리를 안겨주기 때문에 아이들은 좀비 엄마에 만족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집 안 전체에 퍼진다.
"동전 놀이해요"
"어떻게 하는 거야? 게임 방법 알려줘"
"침대 위에 동전을 놓고 손바닥으로 쳐서 뒤집어지면 가져가는 거예요"
"아... 엄마, 이거 어릴 때 많이 해봤는데"
500원짜리 9개로 30분을 신나게 놀았다.
"이제 원카드 해요"
아이들은 며칠 전 새로 배운 원카드 게임의 재미에 푹 빠졌다. 귀요미는 새로 배운 원카드 게임에서는 지는 걸 유독 싫어한다. 패배를 수긍할 수 있는 9살 반짝이와 달리 7살 귀요미는 꼴찌가 되면 카드를 다 던져 버린다.
그래서 난 반짝이한테는 이길 때도 있지만 귀요미랑 할 때는 웬만하면 져 준다.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데 계속 지기만 하면 흥미를 잃을 테니깐.
'회사 가는 날에 비해 오늘은 많이 놀았네. 아이들도 놀이시간에 만족했겠지?'
사건은 저녁 8시 숙제 시간에 일어났다.
반짝이는 영어학원 숙제 때문에 내 노트북을 사용한다. 바로 직전에 이메일 확인할 게 있어서 내가 잠시 노트북을 썼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다.
"엄마가 컴퓨터 쓰고 나서 뭐가 달라졌어요"
"그래? 엄마는 반짝이 영어 프로그램은 안 만졌는데'
"아니에요. 엄마가 쓰고 나서 이상해졌어요"
"뭐가 이상해졌는데?"
그때부터 반짝이의 짜증이 시작되었다.
뭐가 이상한지 설명은 안 하면서 이상해 졌다고만 말하는 반짝이 때문에 나도 짜증이 났지만 이런 상황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반짝이 짜증에 휩쓸리지 않는다.
함께 흥분하거나 짜증 내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뭐가 안되는지 설명해 주면 엄마가 고쳐볼게. 엄마는 반짝이 꺼 만진 게 없거든"
"아니, 벌써 이상해졌어요.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엄마예요"
억울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명확히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저런 말을 들어야 하나?'
1분쯤 흘렀을까?
반짝이가 컴퓨터로 다시 영어 숙제를 하기 시작한다.
"우와, 그거 어려운 문제인데도 반짝이 혼자서 잘하는데?"
"그런 말 한다고 안 풀려요"
진심이기도 했지만 반짝이 마음을 풀어보려고 건넨 말이기도 했기에 속으로 뜨끔 하면서도 아닌 척했다.
"풀리라고 하는 말 아닌데? 엄마가 옆에서 보니 정말 잘해서 말한 건데?"
'뭐 저리 눈치가 빨라?' 눈치가 200단인 반짝이가 웃겨서 마음속으로 조금 웃었다. 이것도 들킬까 봐 조심스럽다.
반짝이는 그 후로도 20여 분간을 짜증을 냈다.
혼자서 짜증 내는 것이지만 아이 옆에서 듣고 있으려면 참말로 괴롭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반짝이 스스로 화를 풀 시간을 주면서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카드(아까 놀던 원카드)를 7장 정도 손에 들고는 내게 묻는다.
"여기서 다이아몬드 A 카드를 뽑으면 엄마는 나랑 같이 숙제를 할 수 있어요"
"흠..."
나는 신중하게 카드를 뽑는다. 처음에는 한 번에 다이아몬드 A를 뽑았다. 하지만 이후로 계속 실패했다.
어느 순간 반짝이 얼굴에 웃음이 스친다. 나는 다이아몬드 A를 못 찾아서 아쉽다는 리액션을 크게 한다.
"아, 이번엔 맞출 뻔했는데. 아깝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카드놀이(?)를 한다. 그러면서 반짝이도 화가 조금씩 풀린다.
그렇게 힘겹게 영어 숙제를 끝마쳤다.
"30분 더 놀고 잘 수 있네. 뭐하고 놀까?
"레고 놀이요"
우리는 30분간 레고 놀이를 하고 나서 나란히 누워 잠이 들었다.
반짝이한테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엄마'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