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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수 Nov 04. 2015

따뜻한 빛

촌PD가 바라본 세상 열한번째 이야기

 요즘 저녁무렵이 되면 환상적인 노을이 펼쳐진다. 계절중의 백미는 가을이라 했던가? 퇴근무렵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람의 결도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노을을 바라보면 어느새 반딧불 같은 가로등이 하나둘 제 빛을 발하고 있다. 완연한 가을의 밤이다.


 도시의 밤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조명색깔이 한정적이었는데 요즘은 LED의 발달로 형형색색의 조명이 도시의 밤을 수놓는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워도 너무 아름다워졌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너무 달콤해서 쉽게 질리는 찐득한 젤리같은 그런 느낌이다. 번화가로 갈수록 간판조명이 마치 시장에서 물건사라고 떠드는 상인의 목소리 마냥 와글와글 거리며 불을 밝힌다. 자동차는 어떠한가? 요즘의 전조등 불빛은 너무 밝은 이기적인 빛이다. 이쯤 되니 지금을 빛 공해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면서 밤을 극복한 최초의 존재가 되었다. 까맣고 어두운 밤... 누구에게 공격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공포의 시간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내 따뜻하고 밝은 밤이 되었다. 이것이 지난 수 천년 농경시대에 이어져 온 밤의 역사였다. 1765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의 발명이후 밤의 역사에 혁명이 시작됐다. 도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대부분은 도시로 이동했다. 작게는 수십만 크게는 수백만의 인구가 밀집되어 사는 도시라는 장소는 그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기위해 시스템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시간은 곧 돈이라는 개념의 인간계는 더 이상 인간에게 휴식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밤은 휴식이 아닌 노동의 시간이 된 것이다. 밤을 노동의 시간으로 바꾼 것은 결국 조명 발달의 역사와 같다. 밤이 밝아질수록 인간들이 사는 사회는 더욱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    


 우연찮게 캄보디아에 출장갈일이 생겼다.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 나라에서 밤은 아직까지 휴식의 시간이었다. 깜깜함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어둠이라는 약간의 공포를 어깨 언저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맥주 한, 두캔 정도의 취기에 바라본 이국의 밤은 이내 포근히 이방인을 어루만져 주었다. 내게도 휴식이 찾아온 것이다.

 

 그곳에서 어느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았다. ‘톤레삽’이라는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 위에 지어진 수상가옥들 그리고 구걸하는 아이들... 그곳은 세계최대 호수이면서 또한 최대의 빈민가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인상 깊은 한 소녀를 만났다.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니 우리기준으로 초등학교 3-4학년 쯤 되어 보인다. 시끄러운 보트의 진동이 허릿골을 타고왔다. 그 위에 앉아서 묵묵히 숙제를 하던 소녀... 호수 한가운데엔 달빛만이 고요할 뿐이다. 주경야독이라는 고사성어의 실사판을 보게 된 것이다. 기특한 마음에 우린 촬영용 조명을 그 친구의 공책위에 살며시 갔다댔다. 흰 이를 드러내며 수줍게 웃으며 고마움의 눈빛을 보낸다. 그 눈빛은 따뜻하다. 그래서 이방인의 마음도 따뜻하게 저물어간다. 참 따뜻한 밤이었다.    


 도시의 빛은 자극적이다. 마치 나를 감시 하는듯한 빛의 몰이에 쫒겨 결국 도시인에게 빛은 ‘빚’이 되고 말았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의 빚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편 저 어딘가 깜깜한 나라의 한 소녀가 보여준 빛은 희망 이였다. 삶이 담긴 희망은 재촉하지 않는다.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그래서 인간적이다. 수많은 조명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어도 눈빛하나 이기지 못한다. 

그림설명-제작진의 조명으로 공부하는 아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숙제를 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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