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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수 Sep 30. 2015

첫 배낭여행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촌PD가 바라본 세상 네번째 이야기

 사람은 누구에게나 ‘처음’이 중요하다. 첫사랑의 추억, 첫 캠퍼스 생활 등 많은 첫 경험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살아가는 동물인 것이다. 

 나에게 수많은 ‘처음’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말하라면 첫 배낭여행을 갔던 20살, 그때가 가장 로맨틱한 순간으로 남으리라.

 그 때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새로운 대학생활, 어른이 된다는 느낌, 그 어른이 어디로 튈지 몰라 방황하던 시간들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세계였다. 그런 나에게 인생의 이정표를 제공 해준 것이 첫 배낭여행 일 것이다.    

 1998년 여름 김해국제공항, 그 당시의 공항은 뭔가 높아보였고 분주했다. 난생 처음 가보는 공항은 20살 청년을 공황상태로 만들기 충분했다. 짐을 부치기 위해 데스크로 들어선 그때, “여기다 (가방을) 올리세요”라는 말을 듣고 나는 신발을 벗고 당당히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섰다. 몸무게를 재는 줄 알았던 것이다. 당황하는 직원들과 내 뒤의 따가운 시선, 그리고 밀려드는 창피함에 그냥 그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빨리 어디론가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개그로 시작된 나의 첫 배낭여행 목적지는 일본, 도쿄였다.    

 일본어를 포함한 외국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나에게 그곳은 미지의 세계이자 한편으로 두려움의 세계였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가이드북과 꽤 쓸만한 감뿐... 그때는 스마트 폰은 고사하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언어, 지리적 장벽을 넘어야 했다.    

 처음 도쿄의 느낌은 풍겨오는 향이 달랐다. 한국의 거리는 구수한 향이 난다면 일본의 것은 꽤 정제된 느낌의 것이었다. 신주쿠(Sinjuku)역 서(西)문을 나올 때 풍기는 대도시의 냄새는 아직도 그 때의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다. 수많은 인파, 거대한 건물들 그리고 그들의 생활방식까지 모든 것이 향기에 녹아들어 대도시의 느낌을 진하게 전해주었다. 그 느낌은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는 느낌이었다.  

(사진 : 한낮의 도쿄타워, 야경이 더 아련하다)


 당시 나는 보름 정도를 도쿄에서 머물면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 시간동안 혼자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이내 온전한 나만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사실 그때만큼 나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며 다닌 적도 없는 것 같다. PD가 꿈이었던 나에게 오다이바에 있는 후지테레비 본사 건물은 내 꿈을 더 확고히 해주었고, 무작정 찾아간 와세다 대학에서 꽤 흥미로운 젊은 대학생들과 몸짓 손짓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혼자 여행 하는 것이 심심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혼자 있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가는 곳곳마다 친절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고, 또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도 왜 그리도 많은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는 것의 첫 번째 조건은 먼저 나의 빈자리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배낭여행 중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번은 도쿄타워에서 뜨거워진 발을 식히고 있었는데, 곁에 앉은 젊은 여성이 한국어로 인사를 하는게 아닌가! “나에게도 영화에서 보던 로맨스가?”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몇 마디를 섞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나와 같은 대학에서 유학을 온 선배였던 것이다. 

 짦은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가 약간은 터프한 모습이었지만 눈빛은 고향을 닮아 따뜻한 그런 사람이었다. 본인도 내가 고향사람인 것을 알고 도쿄타워가 떠나가도록 방방 뛰며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하긴 나도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학교 선배를 만나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고향 얘기를 안주삼아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자욱한 담배연기가 인상적인 야키소바집으로 들어간 우리는 금새 친해졌고 그녀는 나에게 처음으로 여행 온 소감을 물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많은 것들을 경험하기에 바빴던 나는 소감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꿈’을 보고 가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랬다. 내 인생의 첫 배낭여행은 무언가 정확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이미지 상으로는 빨간 노을이 멋드러진 언덕위에 전차가 덜컹이며 지나가는 풍경이나 혹은 담배한대 물고 멀리있는 붉은 도쿄타워의 야경이 주는 두근거림이 무언가 내 맘속 어딘가에 있던 ‘꿈’이라는 단어를 자극 시킨 것 같았다.      

 그 선배는 첫 배낭여행을 혼자서 온 후배를 대견스러워 하며 꼭 한 가지를 당부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지금처럼 ‘꿈’을 말 할 수 있는 순수함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살아가라고...

 서른일곱이 된 지금, 이제 그 선배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이 글을 읽을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 뜻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재미없게 이 자리에서 알려주지는 않겠다.  

 수수께끼 같은 선배가 남긴 메시지가 궁금한 사람은 용감하게 떠나보는건 어떨까? 그 여행에서 두근거리는 해답을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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