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vello
우아한 백작부인 또는 고상한 퍼스트레이디가 연상되는 곳, 라벨로(Ravello).
별다른 꾸밈없이도 한몫 크게 일조하는 주변 환경이 일품인 그곳에 당도하기까지는 처음 접한 생소한 지명에 기대가 별로 없었다. 그 덕에 더 큰 감동으로 받아들여진 건지도 모르니 한편으로는 감사하다.
햇살이 여전히 따가웠지만 한창 무더위가 꺾여 더욱 반짝임이 돋보이던 지난 9월.
굽실굽실한 곡선의 아말피 해안선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작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마을 라벨로와의 첫 만남은 나에게 나지막한 울림과 긴 여운을 남겼다.
수상 이동하며 선상에서 올려다본 마을은 마치 하늘과 맞닿은 듯했고, 정작 당도하니 그다지 높은 지대도 아니건만 푸른 토파즈 빛깔의 하늘을 지붕 삼고, 사파이어 빛 짙은 바다를 발아래 둔 지형 때문인지 실로 하늘이 가깝게 느껴졌다. 경계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만치 입을 맞춘 듯 하나가 된 하늘과 바다를 병풍 삼고, 그 사이로 뭉게구름이 띠를 두른 듯 두리뭉실 띄워져 있었으니 하늘 아래 낙원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이 아닐까 싶었다.
마을 중앙 광장에 들어서면 소박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 같은 두오모가 햇살 아래 수줍은 미소를 던지고, 광장 정면으로 하늘 가까운 언덕지대에 들어선 알록달록한 가옥들이 앙증스러운 모습으로 이방인들을 반긴다. 그 풍경을 벗 삼아 좁은 골목길 흰 벽따라 걷노라면 무한의 테라스로 유명한 빌라 침브로네(Villa Chimbrone)와 막다른 지점에서 맞닿는다.
현재는 최고급 럭셔리 호텔로 운영되는 이 빌라는 일 년 내내 만실일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로질러 도착한 무한의 테라스!
테라스에 들어서는 순간 기대 이상의 광경에 무의식 중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벅찬 감동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진다.
지중해가 끝없이 펼쳐진 장관 앞 갑갑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수백 년을 버티고 선 조각상들보다 자연 풍광이 이 장소를 더욱 화려하고, 인상적으로 치장시켜준다.
구슬땀을 씻어줄 바다내음 담은 바람 한 줄기 닿아주면 천국에 와있구나 착각마저 들 것 같은 공간.
버지니아 울프가 이 곳에서 영감을 받았다더니 그럴 수밖에! 감히 누가 이 풍광 앞에 뭉클하지 아니하리오.
먹먹한 감동 속 한참 넋 놓고 있노라니 마냥 그곳에 서서 지중해의 순수한 매력에 중독되어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큰 아쉬움 안고 가까스로 발길을 돌려 빌라 침브로네를 빠져나오며 라벨로의 하이라이트는 다 보았으니 이제 찬찬히 여유 있게 노닐자 섣불리 판단해버렸다.
라벨로는 서로마 제국 멸망 즈음 외부인 침략 시 피난처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해 아말피 해상 공화국 시대에는 총독의 권위에 대항했던 아말피의 귀족들이 이주하면서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당시 들어선 고풍스러운 저택이 곳곳에 즐비해 눈이 심심치 않다. 중앙 광장에서 마주한 소박한 모습과는 달리, 귀족적인 요소가 숨겨진 이 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살짝 지쳐 버렸다. 한 여름 무더위 같지는 않아도 여전히 강열한 9월의 이탈리아 한 낮 태양에 노곤해진 탓도 있었다. 해서 잠시 생략해버릴까 망설였던 곳 Villa Rufolo. 빌라가 다 매한가지겠지 방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놓치면 또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빌라 루폴로로 향했다.
빌라 루폴로로 들어선 첫 순간 아뿔싸!
싸늘한 땀이 흘러내렸다. 이 곳을 놓치고 갔다면 큰 실수였겠다 싶은 안도감으로.
라벨로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해안절벽에 지어진 빌라 루폴로는 다양한 아랍풍의 요소가 가미되어 특색 있고, 형형색색 꽃단장한 정원은 오르락내리락 미로 같은 구조로 형성돼 흥미로운 곳이었다. 또한, 빌라 루폴로 정원에서 소박하면서도 유니크한 라벨로의 대표 상징물과 대면할 수 있었다.
바다를 향해 선 둥근 모자 형태의 다정한 두 탑의 작은 예배당과 그 위로 한 점 그늘을 안겨주는 듯 묵묵히 선 푸른 침엽수 한 그루. 하지만 이들의 배경이 지중해와 푸른 하늘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마을의 상징이 될 수 있었을까 살짝 의심이 스며들었다.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매력덩이인 빌라 루폴로에서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오롯이 앗아간 하이라이트는 매년 여름 바그너를 추모해 개최되는 ‘라벨로 페스티벌’의 주요 공연장이었다.
아찔한 절벽 위에 마련된 무대. 무대 뒤로 펼쳐진 지중해와 아말피 해안선.
눈을 감으면 짜릿한 클래식 음률이 귓전을 타고 전율하는 기분에 절로 빠져든다.
우리나라 출신으로는 정명훈 씨가 유일하게 2003년 저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한다.
청정 지중해와 하늘이 한 몸이 된 듯한 자연을 배경 삼아 마련된 무대.
오픈 에어 무대는 세계 곳곳에 많겠지만 이런 절경을 품은 무대가 또 어느메 있으리오?
실내 뛰어난 음향설비를 따라갈 수는 없다 손 치더라도, 하늘을 지붕 삼고, 바다를 배경으로 아말피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환경 속에서 전해지는 음악 그리고 자연이 주는 감동은 실로 특별한 체험이 될 것 같다.
나는 이 무대를 본 순간 다짐했다, 라벨로 페스티벌의 한 관객으로 반드시 이 땅을 다시 찾겠노라고!
바그너와 버지니아 울프, 재클린 케네디 등 저명한 인사들이 사랑했던 하늘과 가까운 마을 '라벨로'.
라벨로의 아름다움은 사탄 조차도 인정해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시험에 빠트리기 위해 유혹했던 장소가 바로 이 곳이라고 전해져 온다고 한다.
특히 이 곳 라벨로에서 바라다본 지중해는 마법과 같았다.
언덕 위이기에 더 너른 시야로 들어오는 지중해 앞에서는 모든 사물과 인물이 묘하게 작품화되는 듯해 보였으니 말이다. 더불어 일상에서 지친 심신이 훤하게 펼쳐진 바다와 드높은 하늘 아래에서 위로 받는 느낌을 선사해주는 마을, 라벨로. 포지타노, 아말피 등 아말피 해안의 그 어느 마을과는 또 다른 매력이 넘치는 색다른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라벨로가 보여주듯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발품을 파는 만큼 발견되는 매력이 넘쳐난다.
하나 발품을 팔지 않아도 인생의 단 맛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또한 이탈리아이다.
떠남이 즐겁고 설레는 곳, 이탈리아의 아말피 해안선이 내려다 보이는 절경을 품은 아담한 산골마을 라벨로.
나는 꿈을 꾼다, 지상낙원같은 그곳으로의 또 다른 여행을...
* 이 곳으로 인도해주시고, 뜨거운 더위에도 쉬지않고 라벨로의 매력을 많은 이야기로 풀어주신 이 글의 숨은 공로자 유로자전거나라 이탈리아 지점의 류재선 가이드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