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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Jan 15. 2017

고향 나들이

언제부터인가 내게는 별천지

모든 것이 낯선 듯하다.

그런 중에도 많은 것이 낯익다.


기내에서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코를 자극하는 탁한 공기.

이제는 낯익어질 듯 하지만 생소하다.

그 공기가 감지되는 순간 얼굴에 살짝궁 회심의 미소가 피어오른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공항을 빠져나오는 순간, 넘실대는 인파와 차고 넘치는 차량,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를 보며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어디인지 재차 실감이 난다.

"실로 여기가 한국이 맞는구나!"

덩치 큰 독일인들 사이에서 시야가 가려져 다소 위축되던 내 모습이 서울 거리를 활보하노라면 비슷한 체구의 사람들 속에서 자신감을 얻는다. 생김새가 같다는 사실 또한 살포시 안도감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이들이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임에도 때론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내 정체성을 의심받을까 움츠러든다. 신조어, 약어가 넘쳐나는 사회, 자주 방문하는 편이지만 긴 공백기는 언어적인 면에서도 나를 과거 속에 가둬버린 탓이다. 나의 언어는 정체되어 있고, 이 땅은 내가 공유할 수 없는 시간들 속 날로 날로 다방면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아닐지라도 우리나라는 쉼 없이 새로운 시도와 변화에 과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쉬이 혹하고, 쉬이 질리는 특성을 지녔음을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먹거리 유행에서 깨닫는다. 한 때 대인기를 몰고 왔던 독일의 Schneeball. 독일에서도 특정지역 외에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그 간식거리가 한국땅을 강타했다는 소식에 너무도 의아했다.

"넘치는 맛난 먹거리를 두고 왜 하필 그게?"

역시나 이내 종적을 감추었고, 이번에 가서 보니 대만에서 들어온 카스텔라라며 판매점마다 대기줄이 엄청난 광경을 보니 한편 씁쓸하다. 무언가에 열광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만 언제 잊힐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 시한부 인생을 사는 듯한 현상이 어디 먹거리 시장에서 뿐일까?

하루살이와 같은 삶이 아닌 장기적 안정이란 이 사회에서 진정 꿈꾸기 힘든 것인가?


더불어 무엇이 ""인지 착각 속에 살아지는 듯한 공간.

밥값도 천차만별이지만 서민들의 한 끼 식사보다 비싼 커피값.

그럼에도 거리마다 즐비하게 들어선 커피전문점.

심한 경쟁 덕인지 몇 년 새 한국의 커피 맛이 급발전한 것도 인정.

그러나, 일회용 컵 사용을 남발하는 그들의 환경의식은 제로.

유럽에서도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 수준에 달해 식대보다 비싸게 느껴지는 커피값,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 않을까?


변화와 발전 속도가 남다른 이 나라.

세계에서 전자정부를 가장 빠르게 도입한 나라 중 하나. 인터넷 보급률 최고, 데이터 송수신 속도도 으뜸인 곳.

그 덕에 많은 관공서 업무가 인터넷으로 가능해진 편의가 제공되지만 이처럼 모든 게 지속적으로 전자화되면 실업률은 어떻게 안정될 것이며, LTE화 된 전자 사회의 각박함은 어찌 해소될지 답이 보이지 않는 암울함.

비록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의 앞서가는 전자화를 본보기 삼지만 정치가 안정되지 않은 이 나라에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급성장을 이루었다 자만하지 말고, 단기간 달성한 엄청난 발전 속에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새겨볼 수 있기를 바람이다.


고향을 떠나오던 날, 공항으로 향하는 차내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수십 년 뒤에 이 땅 위에는 아파트를 제외하고 무엇이 남아 있을까?'

출산율도 세계 최저치라는 이 땅에 멋 훗날 텅 빈 아파트들이 명목 없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지는 않을는지...


체류기간 동안 거의 매일을 지나다녔음에도 볼수록 놀랍다, 이 아담한 나라의 도심지에 자그마치 10차선에 달하는 도로가 있다는 사실이. 이 좁은 땅 위, 너른 도로들이 서울이 앓고 있는 교통난을 넌지시 고자질해주는 기분이다. 그 번잡하고, 혼란한 도심지를 벗어나 인천공항으로 가까워질수록 트여가는 시야에 나는 비로소 "후유!" 큰 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다. 어느새 내게 낯익은 듯 생소해진 고향의 빈 틈 없는 공간들이, 여러 가지 악조건으로 탁해진 공기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나는 머잖아 이 땅을 다시 밟게 되리라.

답답함보다는 그리움이 더 간절한 곳이기에.


그렇게 나의 고향 나들이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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