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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Sep 01. 2018

한 여름날 함께 한 추억

소박한 행복 만들기

모든 게 순식간에 진행됐고, 그런 만큼 어얼리 버드(early bird)들에 비해 곱절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목적지는 북해도 조잔케이 온천마을.

거동이 불편하신 아빠를 위해 딱히 돌아다니지 않고도 하루하루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장소라는 판단과 막연히 여름에 시원하고, 먹거리 풍요롭다는 정보 만으로 결정된 휴가지였다.


북해도는 내 예상을 많이 빗나갔다. 
막연히 일본의 한 지역이라는 이유로, 일본적 가옥과 전형적인 풍광을 기대했었으나 이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딜 가던 문명의 발달과 속도를 같이하지 않은 듯, 촌스럽게 보일 수 있으나 그 매력이 오히려 순수하고, 정겨워 과거를 향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면서도 속은 알차게 현대화를 갖추고 있어 손색없이 편리함을 갖춘 양면성이 있었다. 잠시 기술이 지배하는 외부와의 연결을 끊고, 과거 속의 공간으로 소환된 듯한 장소에서 가족들과의 시간에 충실할 수 있는 휴가지로 손색이 없는, 심신이 편하게 쉴 만한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더욱이 폭염에 시달리던 식구들에게 20도를 살짝 웃도는 기온, 뽀송뽀송한 공기 가득한 청정지대로의 휴가를 선물해줄 수 있어 기쁨도 배가되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리요.


간만의 엄마아빠와 한방생활.

아침을 여는 대화; "아버님 온천 가실까요?", "그러세".

장단 맞춰 묻고, 화답하곤 온천욕을 하러 나서는 장인과 사위들. 엄마에겐 딸들이 있지만 딸만 둔 아빠의 외로움을 아는 듯 사위들이 아들을 대신 하니 흐뭇하다.

떨어져 산 세월의 골을 다 극복 못해 내가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몫을 남편이 대신 아빠에게 몰아 드리니 나는 바라보며 마냥 흐뭇하고, 속으로는 죄송하기 그지없다...


오전 식사를 마친 후에는 "방정리할 시각이니 잠시 바람 쐬러 나가실까요?", "나가볼까 그럼?".

외출 후 온천욕과 이어지는 풍요로운 저녁 식사로 노곤해진 몸처럼 하루해가 지고 나면 그냥 잠자리 들기 아쉬운 마음은 공통분모;

"아버님 어머님 모여 볼까요?", "좋지!".

이처럼 한 마음이 되기도 쉽지 않을텐데 이 두 마디에 온 식구들 자연스레 한 자리에 모여 큰 웃음꽃을 피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두 분은 교회 오가는 일, 가끔 친구 모임을 제외하면 바깥 외출이 잦지 않으시다. 집안이 제일 편하시단다.

집 떠나면 고생인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멋진 여행지라 해도 생소한 공간살이가 집 보다 편할 순 없는 법이니까.

엄마와 아빠는 또한 이미 너무 젊어서 너른 세상의 많은 얼굴들과 대면했고, 70-80년대 이미 1백여 나라를 드나든 아빠는 더할 나위 없지만 엄마 또한 당시 대비, 해외여행이 자유로와진 이 시대에 열심히 다니는 이들보다 많은 지역은 아니래도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땅을 밟아 봤다는 자부심이 크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굳이 지금 안 다녀도 진즉 다녀봤어라는 뿌듯함, 앞서 가는 이에 대한 동경을 한 몸에 받아본 자가 누릴 수 있는 장기 특권이랄까. 이 또한 한 몫 해서인지 엄마는 젊어서와는 달리, 여행에 별 관심을 표하지 않으신다. 여행을 하루 멀다 다니시는 친구분이 여행지에서 보내오는 사진을 보셔도 별 감흥이 없고, 내가 여행지에서 멋진 풍경을 담아 전해드려도 "너희 부부 사진 좀 보내봐!"로 화답하신다. 


어려서 함께 했던 여행을 추억하며 그때 본 경치, 매료당한 풍광에 대해 얘기하노라면 엄마와 아빠는 미리 짠 듯 "그때 너는 에델바이스를 찾겠다고 산 중턱 들판을 휘집고 다녔어", "거기서 너희는...", "그곳에서 너희가..."를 기억해 내신다. 우리 눈에 비친 수려한 자연풍광이나,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멋진 명물들과는 전혀 다른 청사진을 품고 사시는 두 분. 그 중심에 "우리"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북해도에서도 두 분의 패턴은 변함이 없었다.

걷기를, 돌아다니는 걸 썩 즐기지 않는 엄마.

아이들 가는 곳이면 어디던 따라나서고 싶으나 몸이 불편해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포기해야 하는 아빠.

그래도 이왕 비행기 타고 이웃나라까지 왔으니 숙소 주변 산책이라도 하고, 요즘 뜬다는 근방의 여행 명소도 가보자 제안하면 기꺼이 따라나서셨으나 결론은 항상 같았다.

나름 대도시의 모습을 갖춘 삿포로 시내 한복판에서도, 바닷바람 제법 불어대던 오타루 운하에서도, 그리고 빗소리 그윽해 멜랑꼴리 한 운치를 뿜던 지홀호로의 나들이 때에도, 고즈넉한 조잔케이를 둘러보면서도 두 분은 예외 없이 앉을자리가 어디 있을까 주변부터 스캔하시고, 명당자리를 찾으신 후 "맘 편히 둘러보고 와, 우리는 여기서 즐길 테니까!". 잠시라도 둘러보는 척을 해야 두 분 또한 마음이 덜 불편하실 듯 싶기도 하고, 이왕 온 거 우리라도 둘러보고, 사진으로라도 두 분께 보여 드리려는 욕심이 없지 않았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사진찍다 먼발치에서 두 분이 뭘 하고 계신가 돌아볼 때마다 두 분의 시선은 동생네 또는 우리 부부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두 분에게는 눈 앞에 펼쳐진 경치보다 자식들의 모습을 매 순간 눈에 담고 싶으신 모양이다. 우리를 응시하시며 함께 오지 못한 두 딸들과 사위 그리고 손주들이 마음에 밟혔으리라.

오타루 운하 - 호카이도의 멜론 소프트 아이스크림 -  비오는 지홀호
오타루에서 바라본 바다 - 지토세강으로 흐르는 지홀호 - 삿포로 TV탑

짐작하건대 분의 시야에 비추이는 가장 멋진 형체는 파리의 에펠탑도, 런던의 빅 밴도, 로마의 콜로세움도 아니며, 가장 아름다운 풍광 역시 스위스의 마터호른에서 바라보는 노을도, 형형색색 산호초와 물고기들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몰디브 바닷속도, 이탈리아 남부의 아기자기하고도 사랑스러운 아말피 해안 또한 아닐 것이다. 두 분이 육안으로 가장 보고 싶고, 가슴에 가장 담고 싶은 그림은 장소가 어디가 됐건 "우리"들이 담긴 풍경이 아닐까 감히 추리해본다. 그 공간이 아무리 초라한 곳이라 해도, 같은 서울 하늘 아래건, 다른 대륙이건 사는 공간을 불문하고 항상 함께일 수 없는 딸들, 그리고 사위들, 손주들이 함께라면 그곳이 가장 행복한 여행지이자, 그 모습이 가장 간직하고 싶은 순간으로 비추이는 게 아닌가 싶다.


때문에 평소 여행에 의미를 두지 않으시면서도 자식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고 하면 화사한 봄꽃이 피어오르듯  설렘과 기대를 품고 기다리심일 것이다.
여행의 재미를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자함도 아닌 오롯이 자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의미가 색다르고, 당신 몸 좀 불편하셔도, 짐 꾸리고, 집 떠나는 게 거추장스러워도 기꺼이 따라나서시는 것이 아닐는지 그 마음이 애잔하게 전해지는 듯하다.


갑자기 기획돼 엄마와 아빠를 모시고, 동생네 내외와 여섯이 떠난 우리의 북해도 온천여행은 이처럼 잔잔하게 흘렀다. 그 어떤 하이라이트도 없었다. 매일 세 끼 신선한 지역산물로 차려낸 풍요로운 식사와 노천 온천욕 즐기고, 가족간 밀린 이야기 보따리 풀어 헤치며, 소박한 행복으로 가슴 가득 채워온 외에는. 하지만 딱히 이벤트가 없었어도 그저 함께라는 사실이 행복한 부모님 그리고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기에 더욱 흐뭇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터득한 지혜, 효도하려고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는 여행이라면 조금은 내 욕심을 버리고, 두 분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춰드림이 마땅하다는 것.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내 욕심을 부리다 보면 모든 것을 함께 하기 힘든 어르신들을 불편하게 하고, 성을 채우지 못해 스스로 불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눈치 보일 정도로 지나칠 필요 없이 살짝궁 배려하노라면 모든 게 수월하고, 서로 만족스럽다는 것. 이렇게 함께 떠나기 힘든 효도여행은 고운 추억뿐 아니라 현명한 삶의 지혜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한다.


조잔케이의 운치 그리고 나란히 걷는 뒷모습이 자아내는 따뜻함

또다시 한 여름 한국에 가게 된다면 망설임 없이 부모님과 동생네 식구들과 다시금 북해도를 방문해 보고 싶다. 순박했던 그 첫인상과 우리의 행복찬 웃음소리가 그때도 변함없이 함께해줄 것을 소망하며.

빗소리 운치 있게 땅 위로 떨어지던 여름날, 우산을 함께 받치고 지홀호 근방 골목길을 나란히 서서 사이좋게 보폭 맞춰 걷던 엄마와 아빠의 다정스럽던 그 뒷모습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뒤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기에.
부모님을 위한답시고 기획하고, 떠난 여행이 결국은 나를 위한 여행이 되어 돌아온다. 설사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여도 함께라서 즐거웠고, 그리하여 오래 기억하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시간 그리고 추억으로 남았으니!


그리고, 일상으로 복귀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 속에서도 엄마, 아빠 모시고 함께 떠날 또 다른 가족여행을 꿈꿔본다.

당신들의 기쁨이 우리에게 더 큰 기쁨으로 흘러 내릴터이니 품어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흡족하다.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여러 모로 여건이 허할 때 이루어 가자, 영원한 기회는 없을 지니.

함께 해 주심에 감사하며, 가까이 있어 드리지 못해 죄송함을 이 글로 대신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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