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한 이방인 Jul 30. 2021

가까이 있는 기적

견딤의 결과


기온이 싸했던 지난 11월 그 어느 날.

이른 아침 수술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나는 멍한 시선으로 나 자신에게 수십 번 되풀이하며 자문했었다,

"나 떨고 있니?"라고...

90년대 중반 최고 시청률이 60%를 훌쩍 넘는 기록을 남긴 대국민 드라마 모래시계.

그 마지막 회에서 사형대로 끌려가기 전 배우 최민수가 친구 역이었던 박상원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건넨 그 명대사를 수도 없이 번복하며 툭. 툭. 천정을 향해 내뱉고 있었다. 코로나 시국이란 이유로 단 한 명의 보호자조차 병원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알싸한 공기와 긴장이 감도는 수술 대기실, 입술을 앙 다문 채 읊조리는 대사를 받아 줄 상대가 없는 현실이 잠시 고독이라는 사치를 맛보게 해 주었다.

마취제가 스멀스멀 기분 나쁘게 혈관을 타고 내 의식을 잠재운 순간부터 그 서러움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와 졌으니 마취약 발명인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MRI로도 종양의 정확한 번지수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촬영 사진상 위치 파악이 되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복잡하게 들은 설명을 내 식대로 간단히 표현하자면 아파트 동수는 찾았는데 호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워낙 희귀성인 데다가 집도하는 의사들도 이 종양을 눈으로 본 적이 없어 일단 열어봐야 의도대로 수술이 가능할지 여부가 좌우될 것이라 했다. 막연함이 화락 안겨들었다.


극단적 초기 시나리오 대신, 핸디캡을 최소화하기로 합의를 본 이상, 종양을 모조리 절제해내지 못해 조금 더 먼 내일 재수술을 하게 된다 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완전히 절제를 해도 재발하는 고집이 있다 하니 단 한 번의 수술로 완치 기대는 진즉 물 건너간 셈 치자 했기에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졌다고 자신했다.

헌데 열어봐야 상황 파악이 될 거라고 운을 띄고 놓고, 그럼에도 자신들을 믿어보라니 이런 모순적인 이들을 믿고 내 몸을 맡겨야 하나, 이 몹쓸 코로나는 왜 내게 독박 결정권을 일임하는 것인지 초조 속에 콩콩대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지옥을 보고 희망을 노래한 단테처럼 실로 가장 삶의 무게가 버거운 순간, 희망이 스멀스멀 다시 피어나는 법인가?

난감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 앞에서 체념이 맘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체념이란 포기와는 또 다르다고 합리화시켰다. 포기는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것이고, 체념은 두려움과 마주해 스스로 투항하지는 못해도 도망은 않는 것이라고...

최적의 상황은 아니지만 나 대신 전방에 나서 주는 의료진들을 신뢰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에 적어도 이 상황 속에서의 체념이란, 희망을 부둥켜 잡는 나만의 방법이라고 재포장해보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예상보다 종양과의 숨바꼭질이 오래 지속돼 세 개 분야의 전문의들이 머리를 맞대고, 메모장도 아닌 내 내장기관들을 뒤적 뒤적이며 당혹스러웠다는 솔직한 고백이 왠지 인간적이게 받아들여졌다. 종양을 성공적으로 찾아냈으나, 산 넘으니 또 다른 산이었단다. 처음 마주한 혈관점액종은 기타 내장기관 표면과 구분이 매우 힘든 특성의 것이어서 육안으로 그 경계선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체내에 남김없이 절제되었을 것이라 자신하는 모습이 과장돼 보이지 않았다.


해당 기관의 일부 절제로 일상에 불편이 초래될 수 있으나 재활로 다소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도려내는 선에서 수술을 성공하느냐, 아니면 특정 부위를 완전 절단하는 지경까지 가느냐가 관건이었으니 이만하면 실로 기적에 가까운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은 젊은 중년인 만큼, 일상에서의 핸디캡을 최소화시키자는 목표로 수술 직전 시나리오를 수정한 집도의들의 제안은 실로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죽을 고비를 맞았던 것은 아니래도 병 앞에 덤덤하기는 힘들다. 마음고생으로 찌들었던 시간만큼 이 결과는 실제 상황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자, 감사한 선물이었다.

살아오며 기적은 나와는 무관한 행운이라 생각했었다. 한데 기적이 이처럼 가까이 있었고, 내 몫이 되어 찾아오다니!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도 했으나, 그 어떤 순간에도 잡은 손을 놓지 않으셨던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간 흘렸던 눈물의 성격이 서러움과 두려움 때문이었다면 순식간 감사와 기쁨으로 승화되어 마음이 뭉클하게 차올랐다.




두려웠던 것은 (악성으로 구분되지도 않는) 종양이 아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종양을 내게서 분리해내기까지의 미지한 여정 그 자체였다.

희귀 질환자라는 명패를 달고 나서야 나는 나보다 힘든 상황에 처한 이들이 얼마나 많으며, 생명에 지장을 주는 질환은 아니지만 최악은 모면하고픈 간절함을 품고서야 타인의 절실함을 더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가 인류에게 교훈을 건네고, 자연에게 회복할 시간을 허락하듯 내게 허락된 이 깨달음 만으로도 이 질환이 결코 내게 재앙만은 아님을 잊지 않으려 한다. 시련의 숨은 가치를 읽어 낸다면 어둡고 멀어도 그 견딤의 여정은 값진 수확을 거두어 낸다는 이치 또한 깊고 굵게 새겨 기억하려 한다.

미지의 세계에서 한 발씩 내딛는 과정이 비장했던 만큼 나를 찾아온 교훈 그리고 웃을 수 있는 결과에 내 인생이 조금 더 겸허히 고개를 숙이게 되니 이 또한 내게는 시련을 통해 거둔 축복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나며 수술 결과를 가족들, 친구들과 동시간대에 나누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비록 그 순간 몸에는 주렁주렁 주머니들과 긴 관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진통제 효과가 약해지면 엄습해올 통증, 가누기 힘든 몸을 곁에서 간호해줄 사람 하나 없었지만 꿋꿋하게 잘 견뎌낼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까짓 거 평생 영원한 이별이 어려운 상대라고 할 지라도, 하여서 긴장을 삼키며 정기 검사를 수 십 번 다시 받아야 한대도 상상치 못했던 결과, 인간의 힘으로는 이뤄내기 어려웠을 이 기적을 그 누구도 아닌 나의 몫으로 할당해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는 곧 일어나리라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다.


혹한 겨울, 쌓인 눈 아래 꽁꽁 얼었던 땅을 비집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린다는 꽃 '설강화(snow drops)'처럼 가장 힘든 역경을 견뎌내고 피우는 생명의 귀함을 새삼 새삼 가슴에 품어본다.


모든 생명은 아파도 아름답고, 고귀한 것임을 되뇌며 감사함으로 살아가자!

이 감사를 홀로 차지 말고, 두루 나누며 키워 나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애초 시나리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