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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오래된 사진 속에는 어린 나와 젊은 엄마가 함께 웃고 있었다. 엄마는 투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계셨다. 나는 마치 엄마의 어린이 버전처럼 엄마와 비슷한 색의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엄마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웃고 있었다. 엄마는 스물네 살에 결혼하셨고 곧 나를 낳으셨다. 사진 속 엄마는 아마도 지금 내 나이쯤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첫째 딸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딸이라기보다는 친구처럼 대하셨다. 독서가에 시인이신 엄마는 어린 나에게 수많은 책에 대해서, 오페라 곡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피아노도 가르쳐 주셨고 시도 많이 읽어 주셨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특별히 친구들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엄마가 나에게는 친구였고 인생의 선배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다투기도 했던 내 또래 계집아이들과는 달리 엄마는 한결같고 의리있는 친구였다. 그런 엄마와 대화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차분해졌고 생각도 깊어졌던 경험이 있다.
엄마와 내가 서먹해진 것은 내가 초경을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마른 편이었고 생일도 늦었던 난 같은 반 아이들이 다 시작한 '초경'을 하지 않은 채 일 년 넘게 보냈다. 워낙 마른 편인 데다 키도 작았기 때문에 긴 머리를 묶어 후드티 모자에 넣고 다니면 내가 여자애인지 남자애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나 자신을 오히려 즐기고 있었지 않았나 싶을 때도 있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엄마는 나를 데리고 일본에 계신 이모님 댁에 들렀었다. 어른들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와 사촌 언니는 마루에서 헤르만 헤세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이주일을 보냈었다. 헤르만 헤세의 시 몇 개를 읽었을 때쯤, 배가 아팠고, 어지러워 누워있겠다고 했다.
"많이 아프니?"
"응, 언니. 나 죽으려나봐."
"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유 없이 우울했고 전신이 아팠다. 외롭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언니는 그런 내가 정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날들을 매달 겪어야 한다고 했다.
초경이 시작되고 나서 내 몸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봐도 내가 여성이라는 게 티 날 만큼 변화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도, 우울감도 견딜 수 있었지만 정작 힘들었던 것은 엄마의 미묘한 변화였다. 엄마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하고는 했다. 엄마가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기 때문에 나도 아무 말 없는 엄마를 마주 보다 웃어 보였다. 그럼 엄마는 내 웃음을 외면해 버렸다. 그런 엄마는 어딘지 화가 많이 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보다 더 눈에 띄었던 것은 나를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였다. 예전처럼 나를 끌어안고 내 볼에 턱을 마구 비벼대지 않으셨다. 내가 좋아하던 아버지의 꺼끌꺼끌한 턱수염의 감촉도 그때가 끝이었다. 손도 더 이상 잡지 않으셨고 용건이 생기면 한 걸음 떨어져 마치 먼 친척이 그러하듯 사무적인 태도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셨다. 내 몸의 변화, 호르몬의 장난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부모님의 태도 변화에 더 힘들어했던 그해 겨울, 곧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므로 나와 부모님의 대화는 성적과 진로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었다.
나에게 있어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리광과 애정을 버리거나 포기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더더욱... 씁쓸한 서먹함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