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풍경 소리

할머니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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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인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환자분 가족에게서 장미꽃 한 다발을 받은 적이 있었다.


차트를 다 쓰고 퇴근하려고 신발을 갈아 신고 있는데 갑자기 건네받은 선물이었다. 환자분과 각별한 사이도 아니었고 중요한 일에 관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동안 어리둥절 했었다.


"제 할머니께서... 알고 계실 테지만, 눈이 보이지 않으셨어요."


손자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설명했다. 오랫동안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던 환자가 마지막 며칠을 병실에서 보냈었다는 것과 함께 돌아가시기 전에 꼭 '붉은 장미꽃 한 다발'을 나에게 전해달라고 당부하셨다는 것도 말이다.


"왜 꼭 '붉은 장미꽃 한 다발'이어야 했는지는 저희도 몰라요. 할머니의 유언이었으니까요... 부디 사양 말고 받아주세요."


왜 붉은색이어야 했을까?

꽃도 왜 장미꽃이어야 했을까?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대답해 주실 분은 계시지 않았다.

그 장미꽃 다발은 집에 가져다 꽂아두었다가 나중에는 드라이플라워로 만들어 두었었다. 하지만, 특별한 조치 없이 그저 방치해 놓았기 때문인지 그 아름다운 모습이 곧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했다. 마르다 만 붉은 장미 다발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그 장면만이 마치 영화의 스틸사진처럼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죽기 때문이지."


키팅 선생님은 '카르페 디엠'을 그렇게 설명했었다. 붉고 선명하고 싱싱하던 장미가 죽고 말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정말 한 순간에 그렇게 시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왜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가 되려 했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나는 그 붉은 장미 꽃다발을 떠올린다.

'아직은 찾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그 무엇이란 어떤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지금 내가 아직은 그것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며, 그 과정에 서서히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사실 정도다.

때로는 슬퍼지거나 애절하게 그리워지기도 하고, 허무하거나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나를 살게 하는 것이 그것을 찾기 위한 '열정'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왜 꼭 붉은 장미꽃이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거나 어쩌면 이름이 아직 붙여지지 않은 어떤 대상일지도 모른다. 붉은 장미 한 다발이 그때는 아름다웠고, 어느 순간 죽었으며, 말라가다 결국 버려졌지만, 한때 그것이 존재했음을 나는 안다. 나 역시 한때는 어렸고 젊었으며, 사랑받았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며, 세상에서 사라질 것임을, 그러나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 혹은 그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 후부터 모든 시간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현재가 아니라 내 안에 조금씩, 하지만 성실하게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현재의 시간들. 지금 이 순간에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의 맛과 향기도, 지금 보고 있는 슬픈 영화의 한 장면도, 지금 읽고 있는 소설책의 한 문장도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저마다 의미를 갖고 있다. 그 의미 속에서 그것의 흔적을 기록하고, 추억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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